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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Oct 01. 2024

엄마가 사라지다 / 08 밥 안 먹어!

“입맛이 하나도 없어.”

차려놓은 반찬 하나, 국이라도 한 숟가락 떠보지도 않은 채 말부터 하고 보는 엄마가 야속합니다. 며칠간 입맛이 없다며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3㎏ 넘게 빠졌습니다.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몇 숟가락이라도 뜨면 좋으련만 먹기 싫다며 자리를 뜨고 맙니다. 그럴 때마다 속이 상하기도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먹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계속 밥 안 먹고 죽을 거야?”

달래도 보고, 화를 내 보기도 했습니다. 반찬이 입에 맞지 않아서 그런가 싶어서 반찬을 사 오기도 하고, 음식점에서 포장해오기도 했습니다만, 밥맛없는 엄마의 입맛을 돌리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니 속은 속대로 상하고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말았지요.

당기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수 없다며 밥에 숟가락도 대지 않습니다. 밥을 먹지 못하니 기운이 없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합니다. 불안한 엄마를 데리고 내과에 가서 수액을 맞았습니다. 의사에게 식욕증진제 처방을 해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합니다. 먹지 못하는 엄마를 요양병원에 입원이라도 시키고 싶었지만, 요양병원을 감옥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는 절대로 싫다고 합니다. 어쩔 도리가 없어 식사 대용 단백질 음료 두 상자를 집으로 배달시켰습니다. 과즙이 많은 과일도 사다 놓고요. 혹시 단것은 괜찮을까 과자도 사 놓았습니다. 뭐라도 먹고 빨리 기운 차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먹거리를 쟁여놓습니다.

엄마는 치아가 하나도 없습니다. 틀니를 하면 입천장이 다 가려져서, 음식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근래 틀니가 자주 빠져 치과에 갔더니 잇몸이 주저앉아 틀니가 헐겁다고 했습니다. 다시 새로 하기에는 잇몸이 너무 없어서 새로운 틀니를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입맛도 없는데 틀니까지 자꾸 빠져버리니 짜증이 날 만도 합니다. 밥알이 모래알처럼 까슬하고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엄마의 불편함을 해결해주고 싶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속상합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예전 어르신들끼리의 인사말입니다. ‘밤새 무탈해서 오늘도 건강하게 살아계시네요’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라 합니다. 그만큼 노인의 건강은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외숙모의 친정엄마는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며 한참 대화하다가 잠자리에 들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별의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허무하게 일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아침에 엄마를 깨울 때, 가슴이 들썩이는지 숨소리가 나는지 ‘밤새 안녕’했는지 아침마다 조심스럽게 확인합니다. 조금이라도 엄마의 상황을 나아지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라도 해야만 합니다.     

노인이 밥을 안 먹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소화 기능의 저하입니다. 위의 탄력이 떨어지면서 음식물이 쉽게 내려가지 않아 소화가 잘되지 않고 더부룩한 느낌이 듭니다. 소화 기능이 약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식욕이 감퇴 되어 먹는 것에 대한 의욕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후각, 미각의 기능 저하입니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면 음식에의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없어 입맛이 떨어집니다. 특히 짠맛, 단맛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 식욕이 줄어듭니다.

셋째, 고독감이나 무기력감을 느끼는 경우, 우울증으로 밥을 멀리하기도 합니다.

넷째, 치아 건강이 약해져 씹기가 힘들어져 식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외에도 노인이 식사를 거부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당사자와 가족 간의 대화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식욕 부진은 건강 유지에 큰 걸림돌입니다. 체중이 갑자기 감소하면 체력과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한 끼만 굶어도 기운이 없고 쓰러질 것 같은데 엄마는 얼마나 힘들까? 밥이 보약이라 하지요. 식사를 못 해 몸의 기능이 떨어져 건강이 악화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입니다. 특히,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켜 사망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 엄마의 몸무게 감소와 먹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하는 상황을 볼 때 약간의 우울증이 있는 것은 아닌지 정신과에 함께 가서 약 처방을 받아왔습니다. 

생각 끝에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치아 문제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치아는 치과에서 보수하기로 했고, 시간을 보내는 일은 요양보호사와 2층 할머니가 최대한 같이 있기로 하였습니다. 주말에 최대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을 많이 만들기로 했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단연 식사입니다. 고민 끝에 몇 가지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엄마 밥 먹기 프로젝트

첫째, 엄마가 평소 좋아했던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시래기 된장국. 간장게장과 쌉싸름한 나물류를 만듭니다. 음식의 크기는 씹기가 안되니 잘게 자르고 소화를 위해 푹 익혔습니다.

둘째, 엄마를 기준으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엄마의 기상은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에 맞춰 아침 식사를 준비합니다. 편안하게 먹을 수 있게 식사 시간을 길게 잡고, 새소리나 계곡 물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도 켜놓습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대에 식사하려고 합니다.

셋째, 식사 때 모든 가족이 모이도록 노력했습니다.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여러 사람이 모일수록 음식의 섭취량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집에 있는 모든 가족이 모여 한 식탁에서 밥을 먹습니다.

넷째, 낮에 가벼운 산책을 통해 햇빛 쐬기를 30분 이상하도록 요양보호사에게 요청하였습니다. 몸을 움직여 자연스럽게 식욕을 되찾고, 해를 통해 비타민D를 섭취하면 우울한 감정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섯째, 틀니를 사용하는 엄마의 잇몸 건강을 위해 물을 자주 마시도록 했습니다. 입안이 건조해지면 구강건조증이 생기고 입맛을 더욱 떨어지게 합니다. 음식을 먹지 않을 때는 되도록 틀니를 빼놓고 지내도록 했습니다.     

노인들은 병이 나고 나서 고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건강을 완벽히 전으로 돌이킬 수 없을까 걱정됩니다. 더군다나 엄마는 노인 중에도 더 노인입니다. 엄마가 처음 나를 처음 가족으로 받아들였을 때, 물 말은 밥에 간장만 먹어서 애가 탔다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이젠 엄마가 밥을 못 먹고 살이 빠지니, 내 속이 타들어 갑니다.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 나도 엄마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 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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