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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Oct 01. 2024

엄마가 사라지다 / 07 너도 내 나이 돼봐라

탁! 탁! 탁!

깜짝 놀라 쳐다보니 엄마가 숟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는 소리였습니다.

“이 차디찬 생선을 먹으라고 갖다 놨냐? 사람이 그렇게 멍청해서 쓰겠냐? 데워줘야 먹을 거 아니냐?”

월요일 아침. 

매일 그랬듯이 출근 전, 엄마와 아침 식사하려 식탁에 앉았습니다. 늦잠을 잔 터라 회사에 늦을까 걱정이 되어 정신이 없었습니다. 좋은 말로 해도 되는데 왜 기분 상하게 행동하는지 속상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솟구쳤습니다.

“내가 엄마 종이야? 종한테도 그렇게는 안 하겠다! 왜 그렇게 못되게 말해?”

엄마는 내가 회사에 출근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불안한 마음이 점점 더 커지나 봅니다. 한번은 종일 텔레비전 보는 것이 재미없고, 자꾸 울적한 기분만 든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만 있고 싶지만, 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네 식구가 먹고살기에 남편의 벌이만으로는 생활하기가 힘듭니다. 또한, 고집 센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부딪히는 일이 잦아지니 심적으로도 부담스러워 집에만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냉장고에서 먹던 반찬 꺼내만 주고 밥만 퍼다 찌그려 주면서. 네가 나 밥 먹게 해줬냐?”
 평소에 내가 제일 힘든 건 엄마의 말투입니다. 기분이 좋았다가도 말 한마디에 금방 감정이 상해버리곤 합니다. 나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엄마 마음에는 하나도 마음에 드는 일이 없으니 속만 상합니다.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을 바엔 차라리 안 하고 욕먹는 게 낫다는 것이 나의 선택입니다. 뭘 해도 칭찬은커녕 면박만 당하니 안 하느니 못합니다. 

시집살이를 해 본 사람이 시집살이시킨다더니, 엄마가 딱 그렇습니다. 같은 말을 해도 어쩌면 그렇게 기분 나쁘게 하는지, 말 좀 예쁘게 하라면, 태생이 그렇게 생겨 먹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구십 년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데 지금에 와서 내 말 한마디에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 대 왜 아직 안 들어와?"

"엄마. 나 지금 자고 있어. 지금 새벽 7시야."

자다가 엄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엄마이기에 엄마의 방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새벽이고 어제 회사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바로 들어왔다고 설명했지요. 엄마는 지금 저녁인 줄 알고 한 숟가락 뜨셨다고 합니다. 군말 없이 아침 약을 챙겨드렸습니다. 최근 부쩍 이런 일들이 잦아졌습니다. 어제 아침엔 리모컨이 없어졌다며 난리가 났지요. 바로 옆에 놨었는데 발 달린 게 아니면 어딜 갔냐고 내가 가져간 게 아니냐며 화를 내며 한참을 찾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답답해했습니다. 나는 누명? 을 벗기 위해서라도 구석구석 찾았고 결국은 엄마의 이동식 변기 안에 빠져 있던 리모컨을 찾아냈습니다. 

이런 일들은 이전부터도 있었던 일이었지만, 횟수가 빈번해져 무척이나 힘듭니다. 성격이 불같이 급해 못마땅한 일이 생기면 모두 내 탓으로 돌아오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어쩔 땐 화가 치밀어 숨이 막히는 느낌도 듭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날엔 나도 엄마와 함께 고함을 지르며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이내 위장이 뒤틀리고 맙니다.      

엄마는 금방 손에 물건을 쥐고 있다가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찾는 게 매일의 일과입니다. 엄마와 내가 싸우는 절반가량의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기억 못 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고, 자꾸 깜빡깜빡하는 것이 치매라도 걸린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엄마를 더 조급하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엄마! 젊은 나도 맨날 물건 어디에 놨는지 잊어버리고 그래. 핸드폰도 자주 잃어버리고, 가방도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려서 찾는 게 일이잖아. 근데 엄마는 나이가 아흔이 넘었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야.”

얼마 전, 집 앞에 나갔다가 갑자기 현관문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한참을 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속상했습니다.

노인들에게는 치매가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병이라 합니다. 텔레비전에서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노인이 나오면 엄마는 한숨을 푹푹 쉬었습니다. 일어나는 일을 아무것도 모른 채 정신을 놓고 죽어간다는 것이 암보다, 다른 죽을병에 걸린 것보다 더 무섭다고 했습니다.

“치매에 걸릴 바에는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낫지, 저리 살아서 뭐 하냐.”

치매에 걸려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까 무섭다는 보험사의 광고가, 과장 광고가 아님을 엄마를 통해 알게 되었지요. 엄마가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은 엄마 혼자 감당해야 하기엔 너무 큰 걱정거리라는 것을 깊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입맛이 뚝 떨어져서 밥알이 모래알 같아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것도, 기억이 흐려져 옛일이나 사람을 기억 못 하는 것도, 잘 다니던 길을 한순간 잃어버리는 일 등은 성격 급한 엄마가 얼마나 자신을 자책할 일인지 크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에게도 탓을 하는 엄마를 생각하니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엄마의 그 아찔한 경험들이 얼마나 큰 상처와 공포를 가져다주었는지 나는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과연 그것 일들은 혼자서만 감내해야만 하는 일인가? 생각해보니 미안한 마음만 듭니다.

“먹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먹어야 살지, 안 먹으면 큰일 나! 그리고 밖에 혼자 나갔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절대 혼자 나가지 말고 요양보호사님이나 2층 할머니랑만 나가. 밥 먹기 싫으면 과일이나 간식이라도 좀 챙겨 먹고~”

이어지는 잔소리에 엄마가 한마디 했습니다.

“너는 나이 들면 안 그럴 것 같지? 너도 내 나이 돼봐라.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지.”

이제는 내가 엄마를 안아줘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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