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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Oct 01. 2024

우리 엄마는요 / 03 잔소리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엄마의 걱정이 따라붙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가끔은 엄마의 잔소리가 지겹다고 생각할 됩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않아도 될 말을 반복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지요. 의식주에 관련된 것은 물론이고, 걸음걸이, 쉬는 자세, 웃는 모습까지 엄마의 방식대로 따르기를 바랄 때도 있습니다. 설거지는 밥 먹고 바로 해라, 팔자로 걷지 마라, 다리 벌리고 앉지 마라, 여자가 왜 그렇게 크게 웃느냐 등 내 결정권과 자유는 사라지고 엄마의 말에 조종당하는 기분이 듭니다. 사소한 것까지 침해하는 엄마의 말에 언성을 높이곤 합니다. 

“너는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지어서 줘도 그 은공은 나한테 못 갚는다!”

그리고 싸움 끝자락 엄마의 모진 말들은 내가 ‘친딸이 아니라서 사랑하지 않는다!’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괴롭습니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건데 자꾸 핀잔만 들으니 마음이 삐뚤어집니다.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 해야 엄마와의 관계가 좋아질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구십 평생 살아온 엄마의 성격을 내가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보려 노력합니다. 엄마의 노환이 몸에만 오는 것은 아닐 겁니다. 전과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 마음은 젊었던 때를 회상하지만 먹는 것,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모두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젊은이의 내일은 기회이자 희망이지만, 노인의 내일은 포기요 두려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후 내가 겪을 일들이라면 과연, 가볍게 흘려버릴 수 있는 일이 될까? 생각해보면 나 역시 아니오! 입니다. 

“예전엔 김치로만 밥을 먹어도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 김치를 쭉쭉 찢어 밥에 척 올려 먹으면 그렇게 꿀맛이었어!”

“예전엔 버스도 없고 차가 어디 있었관데? 사십 리(15.7km), 오십 리(19.6km) 맨날 걸어 다녔지.”     


노모와 자식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자신 하나 건사를 못하는데 치매에 걸린 노모를 감당하지 못해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보도되지 않은 다른 사건들도 포털 사이트를 쳐보면 줄줄이 나옵니다. 노부부 둘이 살다가 한 명이 치매에 걸려 동반 자살한다거나, 치매에 걸린 부모를 부양하다 지쳐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사건 사고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인의 일을 넘어 사회적 문제라며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기자의 말처럼 빨리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뉴스를 보며 우리 엄마는 그래도 치매에 걸리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2020년 공공데이터 포털 보건복지부 치매 현황 자료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전체 8,134,675명 중, 840,192명이 치매 환자로 노인 10명 중 한 명은 치매 환자입니다. 더불어 85세 이상은 10명 중 무려 4명이나 치매 환자인 셈이지요. 보통 치매 노인은 개인이 감당하지 못해 기관이나 시설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양보험이 있다 하더라도 자녀가 어느 정도는 부담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출근길에 만났던 택시 기사의 말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이 납니다.

“부모가 너무 오래 사는 것은, 자식 죽이는 일입니다! 오래 사는 것은 재앙이에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기사의 충격적인 말에 한동안 멍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거침없이 내뱉는 말에 어떤 사연이 있을 법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지쳤다는 거친 표현이었겠지요.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백 세 넘은 사람 중, 병 없이 건강한 사람들은 상당히 소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디어에서 보는 백 세 넘은 노인을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엄마가 백 세가 되려면 구 년 남았네요. ‘밤새 안녕’ 인사하는 나이. 남은 생, 얼마나 남았을지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는 나이입니다. 끝나지 않을 잔소리 같지만, 하루하루 앙상해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아마도 ‘얼마 남지 않은 사실’은 맞는 듯합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영원한 숙제일지 모릅니다.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면서도 애증의 관계에 있기 때문일 겁니다. 엄마의 잔소리가 지겹다가도 일신상의 이유가 생기면 또 마음껏 기댈 수 있는 존재 또한 엄마밖에 없습니다. 엄마와의 이별을 생각하기만 해도 눈물이 차오릅니다. 엄마가 없는 이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고 언젠가는 엄마가 떠날 겁니다. 나는 아직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친구들은 있을 때 잘하라. 그때가 그리울 거라 합니다.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알면서도 예민한 반응이 나옵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입니다.     


남은 시간. 엄마와 즐겁게 사랑만 하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같이 드라마를 보며 주인공 이야기를 합니다. 평일에는 오전에 요양보호사가 집에 오지만, 혼자 있는 오후엔 적적할까 가끔 CCTV로 말도 걸어봅니다. 어디에서 내 목소리가 나오는지 알면서도 두리번거리는 엄마가 귀엽습니다. 평소에도 입이 짧은 엄마가 근래 더욱 입맛이 없다고 잘 먹지 못해 몸이 깡말랐습니다. 가끔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때,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표현이 어떤 건지 날아갈 듯 신납니다. 가끔 기분이 좋아서 소리 내어 웃는 엄마의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엄마 기분에 따라 내 감정이 들쭉날쭉합니다. 문득 알아차립니다. 엄마가 유독 더 아픈 날은 잔소리마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의 잔소리 어떤 의미일까요? 아마도 당신 없이도 잘 살아가라는 걱정이겠지요. 투박한 말투에 가려져 있지만 분명 나를 걱정하는 사랑의 마음일 겁니다. 엄마의 투박한 말투. 예민하게 반응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예민한 엄마의 딸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대신 ‘들숨, 날숨’하고, 엄마에게 예쁘게 말하기를 연습하려 합니다. 진짜 엄마의 잔소리를 못 듣게 되는 날이 아주 천천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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