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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Oct 01. 2024

우리 엄마는요 / 04 엄마가 되어 엄마를 안아봅니다

톡 쏘는 말투, 확 채어가는 몸짓. 매섭게 쳐다보는 눈빛. 당신 생각과 다르면 윽박지르는 목소리.

사소한 일에 예민한 엄마가 힘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엄마가 더 불안이 크다는 것은 고등학교 때 이모에게 들었던 ‘엄마의 지난 시간’을 알고부터였습니다.

두 번의 결혼 중, 한번은 전쟁이 또 한번은 도박으로 실패했습니다. 생과 사가 달린 전쟁과 일제강점기 역사 또한 엄마의 불안을 더 증폭시켰지요. 가난하고 배고픈 세상은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 더 잔인했을 겁니다. 결혼에 실패했어도 너무 가난해서 받아주지 못한 친정이 있었고, 가장 어렵고 힘들 때 할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릴 때 일찍 돌아가셨고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엄마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혈혈단신 서울에 올라와 식모살이를 시작했지요. 그리고 나를 만났습니다.

엄마는 늘 불안했습니다. 당신 혼자도 힘든데 나까지 지켜야 했으니 힘들었을 거라 짐작만 합니다. 폭력을 일삼는 주인집 할아버지와 늘 싸워야 했고, 가진 것 없이 살아가려면 무슨 일이든 덤벼들어야 했습니다. 안간힘을 썼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만만하게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더욱 강한 존재가 되어야 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잘못될까 걱정되어 밥을 저울에 달아서 먹였다고 합니다. 내가 홍역에 걸렸을 때는 열이 떨어지지 않아 나를 업고 하루에 산동네를 세 번씩 올라다니던 엄마였지요. 그때 엄마 나이는 55세였습니다. 위기에 더 강해진다고 나를 지키기 위해 엄마는 더욱 강해져야만 했을 겁니다. 그런 이유로 엄마는 속마음은 여리고 약하지만, 겉모습은 모질고 강한 모습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남아있는 불안은 엄마를 힘들게 했고 갑상샘 항진증이라는 병을 얻었습니다.      


나의 행동은 엄마를 더 불안하게 했습니다. 내가 배가 아파 화장실을 여러 번 다니면, 뭘 먹었길래 배가 아프냐며 걱정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고 하면 어디가 아프냐고 평소에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고 연설합니다. 주말에 늦잠이라도 잘라치면 어디가 아픈지 걱정부터 하고, 평소 퇴근하는 시간에서 10분만 늦어도 왜 오지 않냐며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나를 걱정하는 것은 알지만 숨 막혔지요.     


나에게도 딸이 한 명 있습니다. 아이에 대한 일이라면 나는 내 능력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내가 배우지 못한 피아노, 태권도, 미술, 공부 과외 등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다 해주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한다면 학습지를 하고 몇백이 들어가는 전집의 책을 샀습니다. 전화가 오는 영어학습지도 큰돈 들여가며 시켰습니다. 내가 가난해서 하지 못한 것들 아이만은 풍족하게 부족함 없이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해하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에게는 늘 부족한 엄마였습니다. 아이가 물질적인 것 말고 ‘엄마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에 탈장 수술했습니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아이가 무섭다며 울었습니다. 엄마가 약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잘할 수 있다고 힘내라며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수술 시간 내내 눈물이 흘렀습니다. 잘해주지 못하고 미안했던 일들만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 기준에서만 사랑한다며 강요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지요. 부모라면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겁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수술 시점을 계기로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고, 내가 그랬습니다. 자식이 잘못될까 조금만 아파도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작은 일에도 놀라기 일쑤였습니다. 내가 평소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엄마가 이해되었습니다. 엄마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자식을 가진 부모는 늘 걱정이 떠나지 않는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나를 간섭하고 참견하고 구속하고 싶어서가 아닌, 늘 걱정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습니다. 마흔일곱의 온전한 어른인 나를 여전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구나! 생각합니다.     


조급한 마음에 아이에게 큰소리부터 칩니다. 뻔히 결과가 좋지 않은 일을 하려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잔소리하지 말자.

-별일 아닌 일에 간섭하지 말자.

-스스로 하게 하자.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자.

-조언을 구할 때 조언하자.

아무리 결심해도 잘되지 않는 일입니다. 내 아이가 소중하기에 조급한 마음이 들어 더 안 됩니다. 사랑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하는 말에 짜증을 냅니다. 마음과 같지 않게 모진 말이 나가서 아이가 상처받았다고 합니다. 순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자존심에 선뜻 사과하지 못합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엄마와 똑같다는 사실을.     


엄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대화할 때는 큰 소리로 말해야 합니다. 그래도 간혹 들리지 않을 때가 있어서 했던 말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답답하고 짜증 나기도 합니다. 내 목소리가 크고 화내듯 들리면 속상하다 합니다. 또 하루에도 몇 번씩 물건을 자주 찾곤 하는데 번번이 없어진 것을 누가 가져갔다 하니,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막상 물건을 찾으면 당신이 다른 곳에 놨거나, 떨어트렸거나, 굴러갔거나 했지요.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만성 질병이 하나둘 생겼습니다.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습니다. 마음으로는 금방 해낼 수 있는 일도 몸이 따라주어 않아 못할 때도 많습니다. 체력이 약하다 보니 뭘 할 수 있다는 용기조차 내기가 어렵습니다. 나로 인해 일을 그르칠까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병원과 약에 점점 더 의지하게 됩니다. 이런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딸은 내가 너무 자주 아픈 것 아니냐며 걱정합니다. 요즘 건망증이 심해진 나를 보며 치매 올까 걱정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합니다. 파스도 붙여주고 연고도 발라주는 착한 딸 입이다. 아이를 보며 건강해져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딸을 보며 엄마에게 더 친절하게 대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몸 아프고 힘들면 예민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노모의 서운함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자식 된 나의 도리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나 생각해보니 미안하기만 합니다. 엄마가 되어 엄마의 감정과 상처를 들여다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받기만 했던 시간. 오늘은 엄마에게 낯 뜨겁지만 살갑게 ‘사랑한다!’ 말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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