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km
먹고 자다 보니 어느새 26살이다. 어른들이 말하길 10대는 10km으로 20대는 20km으로 30대는 30km 40대는 40km으로 간다고 한다. 속도가 정확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시간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현재 나의 20km 속도는 빠르지도 않은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가고 있다. 10대의 추억은 정형화된 틀에 살아 점점 흐릿해져 가지만 나의 20대는 자유의지 덕분인지 몰라도 또렷이 기억난다. 20살은 대학교 한 학기만 했지만 좋은 친구들 덕분에 아쉬움 없이 군대를 갈 수 있었다. 20살의 반, 21살, 22살의 반은 군대. 남들은 군대에 가서 시간을 버렸다고 말하지만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머지 반은 비뇨기과 일, 복학. 23살은 학교 학년 대표. 24살은 학과 대표, 25살은 총학생회 임원을 하다 보니 어느새 졸업을 했다. 준비가 안된 채로 사회에 던져지는 것은 생각보다 용기가 많이 필요하다. 용기의 시간을 후회하기에는 이미 지났다. 쪼금만 더 쪼금만 더. 지난 간 세월의 후회를 하는 것보단 나 정도면 괜찮지라는 마음이 당신의 마음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긴다. 나도 그랬다. 학창 시절을 비롯한 유년시절의 에피소드 하나를 꺼내보고자 한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2000년 초 화창하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 모든 직업에는 귀하고 천하다는 것은 없어요. 즉 직업에는 귀천이 없어요"라는 교과서적인 내용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직업에는 귀천은 분명히 존재해요." 담임선생님은 당황했지만 나의 마음은 굳건했다. 당시 나는 사람들이 환경미화원을 대하는 태도. 예를 들면 공부 안 하면 저 사람처럼 고생한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해. 현재 환경미화원이라면 선망의 직업으로 평가받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남교차로의 유흥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자라나 그런 것으로 추측된다. 술에 취한 아저씨들과 그들을 상대하면 욕지거리를 참는 택시 기사님들. 어른들은 가면을 여러 개 쓰고 있다. 귀천이 없다는 선생님도 내가 본 그 사람들에 속할지도 모른다. 여튼 아직도 내 생각은 변함없다. 귀천이 없다면 무엇을 위해 사람들은 공부를 하는지. 자아실현을 위해 공부를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직업의 귀천은 어른들 스스로 만든 것이다. 더불어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사람은 나를 보호해줄 방패가 있으면 용감해진다. 남자들의 싸움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말리지 마라. 말리지 마라.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액션에 불과하다. 26살 나는 이제 보호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잘못은 하면 학교, 선생님 이런 단계 없이 바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어른의 책임감은 비로소 천천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썩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책임지는 게 많을수록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