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학하는 CEO Jul 18. 2021

프랑스 화장품 대기업과 일하기_04

서류와의 전쟁

기분 좋은 귀국 길

샌프란시스코 출장은 성공적이었다. 결혼은 식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르고, 영업은 발주서를 접수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출발은 좋았다. 미국 지사와의 협업만으로도 훌륭하지만 프랑스 본사와 개발 진행을 하여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수출이 된다고 하니 더 기분이 좋았다. 


출장과 시장조사를 마치고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아침에 도착해서 그날은 집에서 시차 적응도 할 겸 쉬고 다음 날 회사로 출근을 했다.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출장보고서를 들고 이사님과 대표님께 출장 경과보고를 했다. 그 날 만큼은 개선장군인 것 마냥 마음이 든든했다. 하지만 정녕 그때까지도 몰랐다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해외출장 복귀 후 일상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긴급한 현안들이 몰려온다. 실시간 업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뤄두었던 일들이 회사 내부 다른 팀들과 고객사로부터 정말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정신없이 현안들을 쳐내고 나니 어느덧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겼다. 퇴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샌프란시스코 미팅이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감사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전쟁 같았던 출장 복귀 첫날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해보니, 드디어 프랑스 본사 담당자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Hi Jason,

I couldn’t agree more on the benefits of meeting in person!  
I really enjoyed our e-meeting and hope you enjoyed in San Fransico. Please visit Paris next time.
It was so interesting learning about the Asian skincare market and see in person the exciting innovation you are supplying.
We have a process for our approval suppliers.

Please find attached all the documents you have to read and signed and follow for the projects. Don't hesitate if you have questions and if you want to discuss them.

Thanks 
Best regards, 


메일을 읽어 내려가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첨부파일이 무려 22개였다. 파일들을 모두 다운로드하여 일일이 확인을 해보았다. 각각의 파일들은 20~40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것도 한글이 아닌 영어로 써져 있는 전문용어 투성이인 서류를 660 페이지나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660페이지 원서는 부담스러운 편인데, 원서의 난이도가 아니었다. 내용인즉, 제품 개발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전, 세포라의 공급업체로 등록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서류가 등록에 꼭 필요한 서류들이었다. 공급업체의 윤리, 노무, 품질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셀프 증명을 해야 하는 서류였다. 서류를 일일이 확인한 뒤 유관 부서가 서류를 작성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줘야 했다. 

22개의 서류 목록



서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회사 내부에는 영어를 원활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해외영업 담당자가 영문 서류를 번역하여 유관부서에 전달을 한 뒤, 해당 부서에서 서류를 작성하면 다시 영어로 번역하여 고객사로 전달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했다간 일주일 내내 서류만 번역해야 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고객사는 우리 사정을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봐주진 않는다.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글로벌 기업과 협업을 해본 경험자가 있다면 물어보며 진행하면 될 텐데 그 당시엔 회사 내부는 둘째치고 세포라와 협업을 해본 사람 조차 많지 않았다. 초록창에 물어본들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아니 힌트조차 얻을 수가 없었다. 


내부 영업의 힘

필자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결국 '구글 번역기'였다. 어차피 필자도 그 당시엔 품질, 연구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 용어는 몰랐기 때문에 번역을 했다 해도 다시 담당자에게 물어봐야 했다. 모든 서류를 내가 끌어안고 있기보단 서류 종류만 파악한 뒤 서류 성격에 맞는 부서로 전달했다. 그 당시엔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단 구글 번역기와 사용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리고 모든 부서 담당자들이 함께 서류를 확인하였다. 필자는 담당자였기 때문에 모든 서류를 하나하나 다 읽어보았다. 모르는 부분은 구글을 검색하여 알아보려고 노력했고, 전문용어들은 모아뒀다가 유관부서 담당자들에게 각각 물어보았다. 그렇게 3일 동안 난리법석을 떨었더니 겨우 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어떻게 그 일을 했나 싶다. 아마 유관부서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업인들에게는 '고객 영업'도 중요하지만 '내부 영업'도 중요하다는 속설이 있다. 영업은 절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 품질, 마케팅, 경영관리 등 회사의 모든 물적, 인적 자원을 사용하여 영업 담당자들을 통해 매출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류를 제출했지만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서류 보완 요청이 접수되었다. 보완 요청 중 가장 황당했던 것은 모든 서류 페이지에 담당자가 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류를 다시 확인해보니 정말 모든 서류 하단에 선명하게 'signature'라고 적혀있었다. 'signature'를 못 봤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당시 필자의 상식으로는 660페이지에 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비상식이었다. 그래서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세포라 담당자는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부턴 서명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서명을 많이 해본 적이 없었다. 우스갯소리지만 필자는 그 뒤로 서명을 참 잘한다. 

서명의 달인이 되었다. 

그렇게 무사히 1차 관문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제품 개발이 시작되었다. 


5편에 계속 



이전 03화 프랑스 화장품 대기업과 일하기_0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