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달 달리기 효과
몸이 무겁다.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소홀히 했더니 체력은 약해져 있고, 체중은 늘어 있었다. 체중은 늘고 늘어 어느덧 심리적 경계 수준까지 도달했다. 경고 수준까지 체중이 도달되지 않도록 가끔 굶기도 하고 운동도 했지만, 제대로 운동을 하질 않으니 여지없었다. 이번에도 다시 경고 체중에 도달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듯 나의 체중도 증가했다.
엔트로피 증가 법칙을 추종하는 나의 체중
물리학은 잘 모르지만,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에 등장하는 데, 열역학 제2법칙이란 항상 전체 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에너지가 쓸모없는 상태로 바뀌는 것이다. 집 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어질러지고, 우리의 체중은 점점 증가하지만, 집 안은 스스로 정리되는 법이 없고, 체중은 저절로 감소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집 안을 정리해야 하고, 체중 감소를 위해서는 운동과 식이요법을 행해야 한다. 이는 엔트로피를 낮추는 과정이자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 인류는 이 엔트로피를 낮추려고 노력함으로써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엔트로피를 낮추려는 노력이 행해지지 않으면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한다. 마치 체중처럼...
강력한 경고 시스템
다행스럽게도 나에겐 강력한 경고 시스템이 있다. 심리적 상한 체중에 도달하면 나의 뇌 속엔 경고등과 함께 알람이 힘차게 울린다. 그리고 당장 운동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40년 가까이 살면서 체중 감소에 좋은 여러 활동들을 많이 해봤지만 가장 훌륭한 것은 달리기다.
그래서 이번에도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일찍 일어나는 편이지만 새벽 달리기를 위해선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새벽 달리기를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일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드디어 첫날
알람이 울렸다. 30분 정도 빨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일어나리라 자신했건만, 바닥으로 떨어져 있던 체력을 고려하지 못했다. 어제의 나를 원망하며 더 잘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강력한 경고 시스템이 작동 중이었기 때문에 더 잘 수는 없었다. 달리기 할 때 가장 힘든 구간인 '침대에서 현관' 구간을 힘겹게 통과했다. 잠이 덜 깬 채로 옷을 갈아입고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운동하기 전에 중요한 스트레칭을 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하니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년 전 꾸준히 달리기 했을 때의 나를 떠올렸다. 10km 정도도 1시간 내로 거뜬히 주파하던 그때의 나를 상상했다. 작년의 달리기 잘했을 때의 나를 떠올리며 달렸다. 그렇게 1km 지점을 돌파할 무렵 종아리는 당기기 시작했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그제야 체력이 심각하게 떨어져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바로 현실을 깨닫고 강도를 낮췄다. 초보자 모드로 변경했다. 작년에 뛰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체력이 바닥이면 다시 바닥에서 시작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새벽 달리기는 이제 한 달을 맞이했다. 매일 뛰지는 못했다. 경험상 몸이 안 좋을 때는 쉬어야 한다. 그래도 80% 이상은 뛰었고,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
달리기를 통해 일어난 변화
일단 몸이 가벼워졌다. 한 달 전에 비해 체중은 약 4kg 정도 감소했다. 내 몸에서 삼겹살 20인분(1인분=200g)이 빠져나간 것이다. 꽉 끼었던 옷들은 이제 적당한 핏으로 돌아왔고, 숨겨져 있던 턱 선이 살아났다. 덕분에 목도 길어 보인다. 또한 전날 야식과 음주로 퉁퉁 부은 얼굴이 아닌 매일 부기 빠진 얼굴로 출근이 가능하다. 외형적인 긍정적인 변화는 자존감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두 번째, 체력이 좋아졌다. 스타트업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많은 업무량을 감당해야 한다.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초기엔 오히려 더 힘들었지만 계속 달리고 체력이 좋아지기 시작할 때부턴 주 7일, 70~80시간을 일해도 거뜬하다.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사업 초창기 시스템을 확립할 때는 어쩔 수 없다. 직장인은 각자 맡은 바 역할만 수행하면 되지만 스타트업은 모든 부분을 혼자 또는 적은 인원으로 해내야 한다. 정신력 또한 굳건한 체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정신이 체력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체력이 정신을 지배하기도 한다.
세 번째, 영감을 준다. 달리기는 마치 믹서기와 같다. 각종 야채와 과일을 믹서기에 넣고 작동시키면 건강한 야채주스가 된다. 달리기를 할 때 각종 아이디어와 생각들은 잘리고 갈리면서 산산조각이 난 뒤, 무작위로 섞이고 연결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재탄생된다. 생각 정리가 필요할 땐 새벽이 아니더라도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 어려운 여건이면 걷기라도 한다. 고민이 많을 때 달리거나 걷기를 해보면 생각이 정리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것이다. 다만, 주의할 점은 독서 또는 사색 등의 인풋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풋이 없는 데 아웃풋이 나오지는 않는 다. 믹서기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는데 주스가 나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이디어를 얻고자 하면 독서를 하거나 깊은 생각을 선행해야 한다. 달리기는 그저 믹서기일 뿐이다.
한 가지 팁으로, 달릴 때 핸드폰이나 애플 워치 등 메모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재빠르게 기록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휘발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음성 메모를 통해 저장하는 것이다. 나는 애플 워치를 차고 다니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는 음성 녹음 기능을 활용해 즉시 저장하고 달리기가 끝난 뒤 확인한다.
새벽에 나와보면 생각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음에 적잖이 놀란다. 새벽 배송하는 사람,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 청소하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등 정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세상은 내가 눈 뜨고 있을 때만 돌아가는 게 아님을 느낀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몸이 무겁다고 느끼는 사람, 변화를 원하는 사람, 중요한 일들을 앞두고 있는 사람,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고민이 많은 사람!
일단 달리자. 적은 거리라도 좋으니 달리자. 그리고 꾸준히 달리자. 생각의 믹서기를 작동시키자.
(믹서기 앞, 뒤, 좌, 우 광고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