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갖추어야 할 기본기로 여겨지는 운동이 몇 가지 있다. 줄넘기, 수영, 자전거 같은 것이 그렇다. 운동신경이 꽝인 나는 그중에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줄넘기는 10개를 넘기기 어렵고, 수영은 숨쉬기 단계에서 무너졌으며, 자전거는 보조 바퀴가 달린 네발 자전거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런 것쯤 못한다 해도 생명을 유지하고 사는데 지장은 없다. 자전거 외에도 탈것은 널렸으며, 수영을 못해도 물놀이는 할 수 있다. 구명조끼와 튜브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순간은 생긴다. 인피니트풀이 유명하다는 호텔에 가서도 나는 바닥을 걸어 다닐 뿐이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 좋다는 여행지에서도 나의 수단은 오직 튼튼한 두 발뿐이다. 나 때문에 자전거 못 타서 아쉽지 않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걸어 다니면서 보는 게 훨씬 더 재밌다고 답했다. 말이 그렇지 어디 그렇겠는가. 자전거 여행과 걷기 여행이 주는 기쁨은 엄연히 다를 텐데 말이다.
대학생 시절, 동아리에서 강촌으로 엠티를 간 적이 있었다. 한 친구가 다 같이 자전거를 타자고 제안했고, 그중에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난 숙소에서 기다릴게 잘 다녀와,라고 말했지만 한 선배가 그럼 자기가 태워주겠다고 했다. 자전거 대여소에서 페달이 두 쌍 있는 2인용 자전거를 빌렸다. 나도 열심히 발을 굴리면 민폐는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자 시원한 강바람이 얼굴에 닿는 그 느낌이 좋았다.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보면서도 난 열심히 발을 굴렀다. 얼마나 탔을까. 앞자리의 선배가 잠깐 쉴까 하고 물었다. 난 아직 힘들지 않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너무 신이 나 있었다. 아마 조금도 쉬지 않고 자전거를 탔던 것 같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나서, 그 선배는 다리를 비틀거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열심히 페달을 밟았으니 앞사람이 힘들지 않을 줄 알았다. 두 사람 분의 균형을 잡는 일의 어려움을 미처 생각 못했었다.
자전거를 배우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루, 아니 반나절이면 자전거쯤은 쉽게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나의 운동신경에 놀라 가르치기를 포기했다. 자전거에 올라타서 한 바퀴 구르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벌써 43년. 그 사이 어쩌다 말 타는 법은 배웠지만, 자전거 타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이 나이에 무슨, 하며 포기하며 살아온 것도 같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세 가지뿐이라고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이 겐이치는 말했다. 이 말에 공감한다. 은퇴를 하면서 시간을 달리 쓰기 시작했고, 낯선 곳에서 살아보면서 경험하게 된 것들이 나를 변화시켰다. 부산으로 이사 온 것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는 생각만 하고 시도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하게 된다.
동네 산책을 하다 수영구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대여소를 발견했다. 신분증을 맡기면 두 시간 동안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준단다. 대여소가 있는 곳은 부산의 은마아파트로 불리는 한 아파트 앞. 그 아파트 앞에는 바다를 따라 길게 산책로가 나있었다. 널찍하고 평평한 그곳은 자전거를 배우기 딱 적당해 보였다. 집에서 가깝고, 무료로 자전거도 빌려준다는데 다시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번엔 그가 나의 자전거 선생으로 나섰다. 쉬워. 다들 금방 배워. 너도 할 수 있어. 너 이제 예전보다는 운동신경 많이 좋아졌잖아,라고 그는 말했다. 사실 그랬다. 운동 능력이 꽝이었던 나는 은퇴 후 달리기, 요가로 꾸준히 몸을 달련했다. 예전보다 몸이 반응하는 속도가 조금 빨라진 것 같았다. 어쩌면 난 운동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두대 빌렸다. 안장 높이를 맞추고 엉덩이를 살짝 걸쳤다. 그는 왼발을 페달에 먼저 올리고 바퀴가 구를 때 오른발을 살짝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이 얼마나 간단한 움직임인가. 하지만 난 달라지지 않았다. 한 바퀴 구르고 기우뚱. 두 바퀴 구르고 기우뚱. 그가 뒤에서 잡아주면 몇 바퀴 구르다가도 손을 놓으면 다시 기우뚱. 첫날은 자전거에 올라서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강행군을 선언했다. 매일 오후 2시를 자전거 타는 시간으로 정하고 특훈을 하기로 말이다. 둘째 날, 올라타는 것에 성공했다. 셋째 날, 이제 올라타서 두세 바퀴쯤 구르고 나서 기우뚱했다. 넷째 날, 제법 앞으로 나아가기는 했으나 자전거 핸들이 왼쪽 오른쪽으로 마구 돌았다.
그가 자전거를 타는 나의 뒷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여주었다. 부끄러웠다.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왼쪽 오른쪽으로 기우뚱거리는 나 자신이. 일부러 웃기려고 그러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힘에 있었다. 힘을 빼고 가려고 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둔 채 가볍게 나아가는 것. 몸에 힘을 뺀다는 것이 나에게는 왜 이리 어려운지. 힘을 줘서 핸들을 잡은 탓에 손가락도 다 까져버렸다. 그가 약국에서 사 온 고양이 무늬 밴드를 붙여주며 말했다.
“힘 빼는 게 왜 힘들지?”
“운동능력 금수저인 당신은 이해 못 해.”
그는 뭘 하든 중간 이상은 한다. 심지어 처음 배우는 운동도 바로 자세가 잡힌다. 그런 사람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운동신경은 없지만, 그래도 지구력 하나는 있다. 뭐든 꾸준히 끝까지 하는 능력. 그것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매일 오후 2시 자전거 타기를 꼬박 2주 동안 했다. 드디어 바닷가 산책로 몇 바퀴를 혼자서 돌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단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만! 자전거 도로를 달릴 때는 여전히 좀 불안했다. 좁은 도로 맞은편에 자전거가 지나가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몸에 힘이 들어가고 핸들이 좌우로 꿀렁거렸다. 자전거를 앞으로 굴릴 줄만 알았지, 내 마음대로 조절하는 능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
“얼마 전에 뇌과학 책에서 봤는데, 뇌는 부정어를 인식하지 못한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머릿속에 코끼리만 떠오르잖아. “
“자전거 타다가 갑자기 뇌과학이 왜 나와?”
“그거 때문이야. 내가 방금 저 사람을 피해야지라고 생각했거든. 그랬더니 저 사람을 향해 돌진해 버리는 거야. “
“넌 항상 운동을 글로 배우더라. “
이제 나는 장애물을 봐도 돌진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턴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산책하는 영화의 전당까지 자전거도로가 잘되어 있는데, 이제 두 발이 아닌 도구를 이용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당근마켓을 들락거리며 괜찮은 자전거가 없는지 살펴본다. 따뜻한 봄이 되면 그와 자전거 여행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