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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le Feb 17. 2023

엄마 칠순 여행 ‘간 김에’

 엄마 칠순 때 다 같이 여행 갈까?

 바삐 일하던 어느 오후, 뜬금없던 언니의 이 메시지로 시작되었다. 엄마의 칠순까지 5년도 더 남았을 때의 일이었다. 언니는 여행을 위한 적금을 들자고 말했다. 벌써?라는 나의 물음에 미리 준비해야 부담스럽지 않단다. 돈 관리 업무는 나에게 할당되었다. 일찌감치 미래를 계획하고 업무를 지시하는, 언니는 진정한 리더상이다. 난 만기까지 무려 5년이나 남은 적금 통장을 만들었다. 자동이체를 한 것도 잊어버릴 만큼의 적당한 금액이 매달 인출되었다.


 “스페인으로 한 열흘 정도 다녀올까? “

 “거긴 언니도 나도 이미 다녀왔잖아, 또가?”

 “엄마가 좋아할 거 같아서.”

 “난 트래킹이 하고 싶은데. “

 “엄마, 김서방 발 아파서 많이 못 걷는 거 알잖아?”

 “너네 좋은 데로 가, 난 다 괜찮다.”

 우리의 여행지는 매번 바뀌었고, 말로는 이미 전 세계를 누볐다.


 그와 나는 칠순 여행 ‘간 김에’를 생각했다.

 유럽 왕복 항공권이 생기는 거였다. 그 사이 은퇴를 한 우리는 칠순 여행을 마치고 같이 돌아올 이유가 없었다. 해외 장기 체류를 하면, 지역건강보험료 급여 정지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럼 ‘간 김에’ 오래 머물러도 되지 않을까. 보험료도 아끼고 좋지 않나. 물론, 아끼는 돈 보다 쓰는 돈이 더 많겠지만...

 “유럽 자동차 여행을 할까? 세 달 동안 캠핑을 하는 거지.”

 “한 도시에서 한 달씩 살아보는 건 어때? “

 “그럼 물가가 싼 동유럽이나 남유럽이 낫지 않을까. 조지아? 헝가리? 마케도니아?”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칠순 여행에 붙인 우리의 ‘간 김에’도 여러 번 바뀌었다.


 세계를 떠돌아다니던 여행의 목적지가 정해졌다. 바로 이탈리아! 엄마는 이탈리아에서 로마도, 피렌체도, 베네치아도, 밀라노도 아닌 돌로미티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알프스는 봤으니 이탈리아의 알프스만 보면 된다고. 엄마는 트래킹을 포기하지 않았던 거다. 그곳은 6월 중순은 되어야 케이블카가 운행하고, 가게들이 문을 연다고 했다. 여행 일정은 현충일 연휴를 껴서 정해질 것처럼 보였다. 거의 그럴 뻔했다.


 여행 예약을 위해 언니에게 일정 확정을 요구하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주일 이상 긴 휴가를 낼 거라던 언니는 막상 휴가를 내야 할 때가 되자 자신 없어했다. 그럼, 5월밖에 없었다.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을 끼면 3일 휴가로 9일을 쉴 수 있었다. 3일 휴가 정도는 부담 없지 않나.

 그럼, 돌로미티는 못 가겠네. 회사 다니는 애들 일정에 맞춰야지, 하면서도 엄마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우리의 ’ 간 김에‘ 일정이 애매해졌다. 칠순 여행 앞으로 붙이기엔 추운 날씨가 걸렸고, 뒤로 붙이기엔 성수기의 비싼 요금이 걸렸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칠순 여행을 중간에 끼고 먼저 출국해서 늦게 돌아오는 일정을 짰다. 머물 곳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유럽에는 가볼 만한 도시가 차고 넘쳤고, 그 모든 곳을 돌아다니기에는 돈이 많이 들었다. 한 달에 한도시여야만 했다. 그래야 숙박비와 교통비를 아낄 수 있다. 이 매력적인 도시들 중, 딱 세 군데만 골라야 한다.


 처음 떠올린 곳은 포르투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가 가장 끌렸다. 포르투에서 한 달, 스페인에서 한 달을 보내고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동선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는 스페인 남부의 도시들을 떠올렸다.

 “말라가 어떨까?”

 “그동안 다닌 도시랑 너무 비슷한 느낌이지 않아?”

 “그럼 세비야는?”

 “대도시가 무난하지. 그냥 바르셀로나로 하자.”


 바르셀로나로 결정하고 에어비앤비를 뒤졌다. 한 달 살기에서 숙소는 매우 중요하다. 집에 머물기가 싫어지면 밖으로 나돌기 마련이다. 그럼 돈도 많이 쓰고, 지치고, 우울하고... 아무튼, 별로다. 집만큼 편한 곳 까지는 아니어도 온전히 잠만 잘 수 있는 침실이 있고, 글을 쓸 테이블과 책을 읽을 편안한 소파 그리고 간단한 요리가 가능한 작은 주방도 필요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우리가 원하는 조건의 숙소를 구하려면 한 달 300만 원으로도 부족했다. 한 달 살기로 유명하다는 베를린부터 시작해서 웬만한 도시의 에어비앤비 숙소는 거의 다 둘러보았다. 그러다, 남편의 한마디가 모든 계획을 처음으로 돌려놓았다.


 “아, 우리 90일 넘게 있을 거잖아. 쉥겐조약 때문에 비쉥겐 국가에 한 달은 있어야 해. “

 이런, 애초에 이렇게 뒤질 필요가 없었던 거다. 영국과 크로아티아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이름의 몇몇 발칸반도 국가들이 비쉥겐이었다. 영국은 물가가 비싸기로 악명 높으니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럼 당연히 크로아티아다. 서유럽만 잔뜩 뒤지고 있었는데... 수도인 자그레브는 내륙이라 3월에는 추울 것 같았고, 두브로브니크는 너무 작은 휴양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크로아티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최대의 항구도시인 스플리트에 머물기로 했다. 올드타운에 꽤 괜찮은 숙소를 한 달 120만 원 대에 구할 수 있었다. 숙소를 예약하고, 항공권이 가장 저렴하다는 6개월 전에 왕복 비행기 티켓도 끊었다. 이제 나라 간 이동만 예약하면 모든 여행 준비가 끝나는 거였다.


 그런데! 23년 1월 1일부터 크로아티아가 쉥겐지역에 포함된다는 날벼락같은 뉴스가 나온 게 아닌가!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래서 미리 대사관에 문의 메일을 보냈었다. 23년은 괜찮을 거라는 확답을 받았었는데... 그 말만 믿고 예약했는데... 크로아티아 숙소는 환불불가인데... 크로아티아의 쉥겐지역 포함 소식은 우리에게 천재지변과 다름없었다. 호스트가 이 상황을 이해해 줄까. 이해야 하겠지만 환불은 안 해 주겠지. 그 순간은 정말 막막했다.


 엄마 칠순 여행 ‘간 김에’는 계속 변해갔다. 우리의 의지로도, 외부의 영향으로도…




이번 매거진은 민현​ 님과 함께 꾸려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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