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할 때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랄까.
토요일 오전, 친구와 함께 한강 러닝을 했다.
지각했을 때 버스 놓치지 않으려고 전력질주를 하는 것 외엔, 제대로 러닝을 해본 적이 없는 친구였는데 의외로 꾸준한 속도로 쉬지 않고 잘 달려주었다. 6km코스 러닝을 마치고 친구에게 물었다.
달릴 때 무슨 생각했어?
호흡에 집중하자, 그런 생각. 힘들다고 호흡이나 자세가 무너져 버리면 끝까지 못 뛰겠구나 싶어서.
그렇게 말하며 초등학교 때 체육시간에 배웠다는 씁.씁,후- 호흡법을 시전해 보였다. 이래서 체육시간이 중요하다니까, 라는 말도 함께.
뛰다보면 숨이 차고, 그러면 그냥 되는대로 숨을 몰아쉬고 싶어지는데 그러면 달리기의 리듬이 깨지고 더 숨이 차서 결국은 달리는 게 고통스럽게 된다. 자기 페이스대로 천천히 규칙성 있는 호흡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나는 완전히 글쓰기의 호흡법을 잃어버렸다. 나와 맞지 않는 속도로, 오르막을 계속 달리고 달리다 보니, 씁.씁.후-의 호흡법을 잃고 되는대로 숨을 몰아쉬며 계속해서 글을 썼다. 우악스럽게 숨을 들이 삼키고 또 내뱉고. 어떤 선배 작가는 말했다. 방송 작가라는 일이 글을 쓰는 직업은 아니라고. 그러나 상상하고, 글로 이야기하고,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한 문장을 찾아 머리를 쥐어짜고. 더 나은 문장이 나타나길 고심하며 마감 1분 전까지도 쓴 글을 고치고 또 고치는 그 과정이 어찌 글쓰기가 아니겠는가. 나는 매번 시간에 쫓겨 숨을 헐떡이며 글을 썼고, 손가락 끝에서 나온 텍스트는 어쨌거나 양껏 쌓여 갔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완전히 멈춰버렸다. 더 나아갈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내 속도에 맞지 않는 속도로 무리해서 나아가거나, 쓸데없이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 달리거나, 잠깐 편하자고 숨을 불규칙적으로 몰아쉬어버리면, 오래 뛸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십대 시절에 글 쓰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지금은 글을 쓰는 것에 묘한 거부감이 있다. 폐가 터질 것 같은 고통으로 달리고 또 달렸던 그 때를 내 몸과 마음이 아직 기억하는 것 같다.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면 ‘하기 싫다’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글 쓰는 게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내 속도에 맞춰 씁.씁.후- 천천히 글을 쓰고 싶다.
느리지만 꾸준히, 끝까지 뛰는 사람, 끝까지 쓰는 사람이고 싶다.
이월의 거북. 느리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