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떼_금융
위험이 분산되면, 개별 행위자는 자신이 부담하는 위험의 실제 크기를 인식하기 어려워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위험의 ‘떼몫©’은 과소평가되고, 사회 전체의 부담은 가속화된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에 이르게 된다. 이는 마치, 개인이 할부를 이용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당장의 부담을 감소시키면, 지출 성향이 증가하게 되어 결국 자신의 신용 한계에 더 빠르게 도달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08년 9월, 미국의 투자은행 Lehman Brothers가 파산을 신청했다. 이는 한 금융기관의 실패를 넘어 세계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뢰를 흔드는 사건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위기는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구조적 위험이 한계 도달한 표출이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은 저금리 환경 속에서 주택 시장이 빠르게 팽창했다. 집값은 꾸준히 상승했고, 금융기관은 이를 기반으로 대출을 확대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차입자에게까지 주택담보대출이 제공되었고, 이러한 수많은 대출은 증권화를 통해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묶여 전 세계 투자자에게 판매되었다. 위험은 여러 투자자에게 나뉘어 부담이 줄어든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 복잡한 금융상품 속에 재포장되어 시스템 전반에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캘리포니아 외곽에서 첫 주택을 구입한 ‘마이크’는 집값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 믿었다. 대출 상담사는 초기 몇 년간 낮은 금리가 적용되는 변동금리 상품을 권했다. 월 상환액은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고, 필요하다면 재융자도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다.
한편 뉴욕의 한 연기금에서 일하던 ‘사라’는 주택담보대출을 기초로 한 증권을 안정적인 수익 자산으로 편입했다. 신용평가사는 높은 등급을 부여했고, 과거 통계는 주택 가격의 광범위한 동시 하락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위험이 분산된 투자’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주택 가격 상승이 둔화되면서 균열이 드러났다. 연체율이 급증하고 집값이 하락하자 담보 가치가 감소했다. 마이크의 월 상환액은 금리 조정과 함께 급격히 늘어났고, 재융자는 갑자기 어려워졌다. 이와 동시에 사라가 편입한 증권의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개별 차입자의 연체는 증권화 구조를 따라 상위 금융기관으로 전달되며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을 위협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부실 대출이 아니었다. 금융기관들은 주택담보대출 기반 증권과 같은 장기 금융자산을 단기 차입으로 운용하며 높은 레버리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금 시장의 신뢰가 약화되자 차입은 연장되지 않았고, 유동성은 빠르게 악화되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이러한 구조가 지속될 수 없음을 드러낸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후 금융기관 간 거래는 급격히 위축되었고, 신용 경색은 실물 경제로 확산되었다. 기업들은 투자를 보류했고, 소비자들의 지출은 줄어들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재정 지출을 통해 시스템 붕괴를 막고자 했다. 규제는 강화되었고, 자본 건전성 기준도 상향되었다. 새로운 원칙이 마련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원칙을 깨는 것이 이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현재와 잠재의 최대후생을 담보하는 상황에 도달할때까지 반복된다는 것이다.
2008년 위기는 본질적으로 항상 반복되었던 구조적 취약성이 단지 증폭된 사례였고, 세련된 금융공학이 눈을 가렸다. 저금리 -> 자산 가격 상승 -> 레버리지 확대 -> 위험의 불투명한 이전 -> 신뢰 붕괴 -> 유동성 경색이라는 흐름. 그리고 위기는 결국 일상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메커니즘의 반복이다. 다만, 언제나 새로운 형태를 취해 등장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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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의 구조 ①- 1997년 한국 외환위기 [https://brunch.co.kr/@ido-khh/2]
*글에 등장하는 ©표시 개념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1.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ido_khh)
2. 네이버 검색 ‘맺몫 떼몫’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