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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두 Aug 08. 2024

피노키오처럼 뻔뻔해질 것.

침투적 사고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강박증과 나는 친구 사이이다. 절친도 이런 절친이 없다. 그와 내가 함께 한 세월이 자그마치 23년.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불쑥 나를 찾아왔다. 처음엔 그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사람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 열두 살 즈음, 신문을 보시고 있던 엄마에게 무심코 던진 질문이다. 엄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람은 죽기 때문에 더욱더 가치 있고, 사는 동안 더 열심히 사는 것이다.”  며 빙그레 미소 지으셨다.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늘어지는 생각 끝에 그 결말은 걸핏하면 우울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내 주 관심사는 공부였다. 그것에 대한 열정, 의지, 집착, 기대, 성취감, 불안감이 공존했다. 3~4 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평가를 보는 학교 시스템 속에서 온도 차가 큰 냉탕과 온탕을 반복해서 오가듯, 결이 사뭇 다른 긴장과 해방감이라는 감정을 번갈아가며 느꼈다.


  다들 비슷했을 것이다. 그때는 2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였고, 옥죄고 있던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띈 듯 우리는 충실하게 일탈을 시도했다. 기절놀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친구의 가슴을 눌러 숨을 못 쉬게 기절시켰다가 친구의 눈에 흰자위가 보이면 정신없이 뺨을 때려가며 다시 원상복귀 시키는 아찔한 과정이었다. 교실 문에 기대고 있는 친구의 가슴을 누군가 눌렀고, 그는 고통스러워했고, 공포감과 심각함을 느낀 나머지 놀이는 실패로 끝났다.


   놀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행위. 모두 다 자의로 참여한 ‘놀이’였다. 무리에서 비교적 대범한 아이는 적극적으로 역할을 수행했고, 소심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는 옆에서 친구들이 하는 그 행위를 지켜보았다. 나는 후자였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쌔근쌔근 자고 있는 어린 동생을 보며 가슴을 눌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떠오른 ‘침투적 사고’였다.      


  다음날, 학교에서 성폭력 예방 아침방송을 했고 배경음악은 어두웠다. 음침한 사건을 재현하는 시각적 이미지와 음악적 효과 때문이었을까, 베토벤 운명 교향곡이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지며 불현듯 어린 동생을 칼로 찌르는 나를 상상해 버렸다.     


 그것이 나와 강박증의 첫 만남이었다.


'이 생각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부모님 말 잘 듣고 동생 잘 돌보는 착한 아이인 내가 어떻게 그런 상상을?'

 이 생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카오스 상태가 되었고 내 머리가 마비된 것만 같았다.      


   내 생각에 지나치게 정직했던 것인가, 그러한 생각을 넘겨버리지도 못할 만큼 어리석었던 것인가. 머릿속이 오염되었다고 믿은 나는 지우개로 그 생각의 흔적을 쓱싹쓱싹 지우고, 표백제로 다시 나의 머릿속을 뽀얗게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매일 밤 그렇게 바라고 잠들었고 나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남아있는지 매일 아침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그럴수록 그 기억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강박사고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사고, 충동 및 이미지를 경험한다. 장애 시간의 일부에서는 침투적이고 원치 않는 방식으로 경험되며 대부분 현저한 불안이나 괴로움을 일으킨다.     

(출처: 위키디피아)     


  강박사고. 8년 후에야 정신과 의사를 통해 이 생각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악마가 나에게 씌었다고, 헤어 나올 수 없는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가 괴로웠고, 동생을 보기가 힘들었다. 감히 동생을 칼로 찌르는 상상을 한 죄인인데, 어떻게 눈을 마주칠 수 있었겠는가.


   특히 시험직전에 나를 찾아왔다. 압박감이 심한 상황에서 더 잘 찾아온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싫든 좋든 공부가  주 관심사였던 나는 그 생각 이후로 ‘죄인’이라는 프레임에 나를 가뒀고 하루하루 그 생각이 떠오를까 노심초사하며 두려워했다.


   생각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나머지 무려 내 인생은 끝났다는 생각을 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차례 했다. 이 수치스러운 생각은 누구에게도 감히 알리지 못할 것이었다.     

  

   3년이 지나고서야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엄마는 이번에도 담담하게 말해주었다.

  “ 엄마도 그런 생각해 본 적 있어. 어릴 적 큰 이모 미워하고 시기할 때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럴 수 있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그 당시 꽤 충격이었던 듯하다. 나 말고도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구나. 엄마가 나를 이해해 주었구나.


   하지만 여전히 나는 강박사고를 무난히 넘기는 방법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대학에 들어갔고, 3학년 때 이 친구의 정체를 알고 싶어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렸고, 강박증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강박사고에 대한 방어적 기제로 쉽고, 소모적인 활동을 해온 듯하다. 떠들기 쉬운 유명 연예인의 가십거리, 사람의 가장 외부에 존재하는 외모나 옷차림, 남에게 비치는 나의 이미지 등에 집중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적어도 그 시간에는 강박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생각의 방향을 내부로 돌여 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침투적 사고에 대한 물음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다른 사람과 내가 뭐가 다른 것일까? “

“내가 정말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것일까? “

”나는 정말 악마일까? “

“이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등등.

 

  나에게 도움 되지 않는 이슈를 말하고 생각하는 내 삶은 흑과 백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단조롭게 느껴졌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했다.


 내 마음속 한편에 눌러앉은 친구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자꾸 그 친구를 들먹이지 않는 것.


생각아, 너 또 떠오르니?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피노키오처럼 뻔뻔해질 것.

 

다른 무언가에 꽂힐 것.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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