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많았다. 남 탓 하지 말기. 화 내지 말기. 남에게 피해 주지 말기...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약속을 깨는 때에는 많이 실망하기도 했다. 실망감은 나를 자책하게 만들고, 부정적인 감정을 키웠다.
내 공황증세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상담 선생님은 내가 너무 많은 행동제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적당한 제한은 절제에 따른 올바른 생활을 유도하지만, 지나친 제한은 행동의 자유를 억압해 심리적으로 위축시킨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바닥에 동그라미가 하나 그려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안에 들어가 지금부터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 후 나는 움직일 때마다 동그라미를 밟았는지 계속 신경 써야 한다. 선에 가까이 갔다면 다시 내 몸을 안으로 이끌어야 한다. 동그라미를 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누구도 칭찬해주지 않는다. 허나, 동그라미를 밟고 나올 경우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실망을 얻게 된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바꾸어 '동그라미 안에서만 있어볼까?'라고 생각해 보자. 일종의 시도 혹은 도전이다. 호기심 섞인 도전은 '한번쯤 시도해 볼만하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어쩌면 동그라미 안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게도 느껴진다. 설사 동그라미 밖으로 튀어나가도 문제 되진 않는다. 오히려 동그라미 안에 잘 있었던 시간 동안 잘 버텼다고 축하해 줄 수 있다.
'해야만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일컬어 '당위적 사고(Should Thinking, Shoulding)'이라고 부른다. 마땅히 이래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으로, 결과는 성공 아니면 실패만 있다. 성공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보상을 느끼지 못하고, 실패는 당연한 것도 해내지 못한 비참함으로 느껴진다. 인지행동 전문가들은 당위적 사고를 부정적인 사고를 강화시켜 우울이나 불안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챕터 1에서 내가 처음 공황발작을 느꼈을 때를 생각해 보자. 갑자기 가슴이 뛰고 긴장될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나 무려 5년 동안 매일 생방송했던 사람이야! 이러면 안 되지!'
이 생각에는 긴장하면 안 된다는 당위적 사고가 숨어있다. 긴장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긴장은 아마추어나 하는 것, 즉 내게는 '실패'를 의미했다. 이어 나는 발표 실패라는 부정적인 사건을 예상했고,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적 사고가 나를 더 압박했다. 이는 불안을 더 높여 공황발작이 이어지게 만들었다.
떠올려 보면 내가 공황발작이 올 때 당위적 사고가 항상 따라왔다. 긴장하면 안 돼, 지하철에서 내려서는 안 돼,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만 해 따위의 생각을 했다. 놀란 나를 진정시켜 줄 여유도 없이 나를 계속 당위적 생각으로 압박했다. 성공 아니면 실패와 같은 흑백논리 사고(All or Nothing Thinking)에 빠져 더 깊은 불안으로 빠진 것이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새로운 문장을 제안했다.
"'하지 말자' 말고 '한번 해볼까?'는 어때요?"
호기심을 갖고 내가 원하는 상태를 도전해 보는 것이다. '다음 역까지만 한번 버텨볼까?', '건물 안에 한번 들어가 볼까?' 하고 생각하고, 여차하면 포기해도 상관없다. 도전은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 실패하면 또 도전하면 된다. 실패든 성공이든 도전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결과를 굳이 따지지 않는 회색의 영역에서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마침내 도전에서 성공했다면 값진 긍정경험을 하나 쌓게 된다. 나 스스로에게 큰 칭찬을 해줄 수 있고, 칭찬은 자신감을 키워 다른 도전을 또 하게 만든다. 공황장애와 이별하는 선순환의 시작이다.
나는 '한번 참아볼까?'로 공황발작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봤다. 몇 분 후 잦아드는 발작을 느끼며 긍정경험을 쌓았다. '한번 낯선 식당에 들어가 볼까?'로 새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줄였고, '약을 줄여볼까?'로 정신과 약을 줄이고 때때로 찾아오는 불안을 참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도전해 보자. 마침내 성공하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한번 해볼까?'를 꾸준히 하고 있다. '한번 글을 써볼까?'하고 시작했던 것이 지금의 브런치 글을 쓰게 했고, 운동, 책 읽기와 같은 습관을 들일 때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는 '오늘 하루만 담배를 참아볼까?'로 시작해 담배를 안 핀지 한 달이 지나간다. 공황장애뿐만 아니라 다른 습관을 극복하는 데 꽤 쓸만한 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