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문제다
문제를 풀어보자.
1. 집 밖을 나서는데 모르는 사람이 칼을 들고 있다.
나의 반응은?
1) 놀란다.
2) 반갑다.
2. 옆 집 사람이 나오면서 칼을 든 사람과 친하게 인사를 한다. 칼 갈아주는 아저씨라고 한다.
나의 반응은?
1) 놀란다.
2) 안심하며 아무렇지 않게 된다.
보통 1번은 1) 놀란다. 2번은 2) 안심하며 아무렇지 않게 된다. 를 선택할 것이다. 위의 예시는 내가 인지행동치료를 받을 때 배운 내용이다. 1번 문제는 인지행동치료 전의 공황발작이고, 2번 문제는 인지행동치료 이후의 나의 변화를 의미한다.
칼을 들고 서 있는 사람, 공포의 대상을 보자마자 즉각적으로 나는 '놀람'의 반응이 나오고 공황발작이 나온다. 인지행동치료는 공포의 대상(칼 가는 아저씨)이 내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알려주고, 자동적인 '놀람'반응이 나오지 않도록 해준다. 즉, 인지행동치료 이후에는 또다시 '칼 가는 아저씨'를 만나도 놀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인지요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론 벡(Aaron Temkin Beck)'은 인간이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s)를 통해 인지적 왜곡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특정 상황에 처하면 자동적으로 어떤 생각이 떠오르고, 감정이 변화하며 신체적 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상황 > 자동적 사고 > 감정 > 행동
예를 들어 내가 연인에게 차였다고 상황을 가정해 보자.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나는 어느 누구와도 사귈 수 없을 거야"라는 자동적 사고가 떠오르고, 슬픔/절망 따위의 감정이 들면서 가슴이 내려앉으며 눈물이 날 것이다. 자연스러운 의식과 행동의 흐름인데, 여기에서 '자동적 사고가 과연 맞는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헤어져서 눈물은 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가슴 아프고 절망적인 일인가? 내 자동적 사고가 지나친 감정을 유발한 건 아닐까?
내가 헤어졌다는 것은 만나던 연인 한 명과 내가 맞지 않은 것이다. 이 세상에 남은 수십억 명의 다른 사람과도 안 맞는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는 어느 누구와도 사귈 수 없을 거야"라는 자동적 생각이 들면서, 세상에 혼자 남겨질 것 같은 기분, 큰 절망감을 느낀다. 아론 벡이 이야기한 '인지적 왜곡'이 바로 이 것이다.
공황장애도 마찬가지다. 나를 예로 들어본다면, 사람이 꽉 찬 지하철을 탔다. 순간 "여기서는 내가 내리고 싶어도 못 내릴 거야", "내리고 싶으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겠지?" 등의 자동적 사고가 나온다. 자동적 사고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긴박하게 느끼게 한다. 그 결과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을 가쁘게 쉬기 시작한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숨을 가쁘게 쉬는 상황은 또 다른 자동적 사고를 불러온다.
"왜 이렇게 숨 쉬기가 힘들지?"
"숨을 못 쉴 거 같아"
새로 나타난 생각들은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들고 그곳에서 도망가게 만든다. 지하철을 내린다든지, 붐비는 마트에서 갑자기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이처럼 자동적 사고는 감정과 행동을 만들고, 행동들은 다시금 생각을 강화하여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상황 > 자동적 사고 > 감정 > 행동
> 새로운 상황 > 자동적 사고의 강화 > 감정의 강화 > 행동의 강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자동적 사고'를 째려봐야 한다. 얘가 진짜 맞는 말을 하는 건가 곱씹어야 한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내리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잠시만요, 저 내릴게요" 말하면 사람들이 공간을 내어줄 것이다. 만약 내가 패닉에 빠져 "내리게 도와주세요" 한다면? 놀란 주변 사람들이 더 빨리 자리를 비켜줄 것이다.
만약 내가 지하철에서 내리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렇다고 한들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역에서 내리면 되고, 길어야 2~3분 후면 다음 역에 도착한다.
내가 겪은 상황과 따라오는 생각, 감정과 행동을 나누어 생각해 보면, 자동적 사고가 꽤 왜곡돼 있고 단편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잘못된 자동적 사고는 잘못된 감정과 행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고쳐줘야 한다. 단, 자동적 사고는 한 번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습관과도 같은 거라, 꾸준히 노력해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왜곡돼 있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기억해야 하며, 잘못된 자동적 사고가 나올 때 다시 교정해야 한다.
상황 > 자동적 사고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인지행동치료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치료이다. 심리상담센터나 일부 병원에서도 진행하는데,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의 전문가 명단을 다운로드하여 치료를 문의할 수 있다. (https://www.kacbt.org/board/list.html?code=b1)
비용이나 시간이 부담된다면 온라인워크북으로 스스로 시도해 볼 수 있다. 증상이 경미하다면 혼자 워크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워크북은 영어로 돼 있지만, 크게 문제 되진 않는다. 브라우저의 '번역'기능을 쓰면 꽤 좋은 품질로 읽어볼 수 있다. (https://cogbtherapy.com/free-online-cbt-workbook)
자료참고: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Los Angeles: https://cogbtherap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