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같이 기뻐하거나 웃기도 하지만 같이 슬퍼하거나 격려해 줄 때도 있다. '다 잘 될 거야'라며 힘을 불어넣어 주고,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에게 이야기할 때는 그렇지 않다. 나약해질 때면 마음속으로 '뭐 하는 짓이야?' 하곤 다그치고, 게으름을 피울라치면 '이러다 너 망한다!'며 나쁜 말도 한다.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 스스로에게 나올 때, 남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말들을 한다. 하고 싶진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때는 더 그렇다. 일을 잘 마쳐도 스스로에게는 칭찬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이런 부분이 부족했어.'
'이 정도 성취는 누구든지 할 수 있을 거야.'
'더 고차원의 무언가를 해내야 해.'
"너무 가혹하네요"
내 이야기를 들은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내가 나를 너무 몰아붙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성장하려면 모진 말과 채찍질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나를 구석에 몰아붙이고 압박하고 도망갈 곳을 주지 않았다. 내 안의 내가 너무 답답한 곳에 갇힌 것처럼 보였다.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우울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본인에게 엄격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 높은 잣대를 들이대고, 넘어서지 못하면 실망하며, 넘어서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일로 치부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본인의 정신력이 소진된다. 성취한 것보다 더 작게 느껴지고, 이상과 먼 자신의 모습이 실망스러워 우울에 빠진다. 혹은 새로운 도전에 앞서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고, 불안이 일어난다. 내 안의 내가 쉴 곳이 없고 끊임없는 압박만 가해질 뿐이다. 정신력이 소진되고 나면 외부 스트레스에 취약해지고, 내가 나를 구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자기 연민이 필요합니다."
"자기 연민이요? 제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라는 건가요? 자존심 상하는데요."
연민의 의미는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라고?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다.
"의미가 조금 다를 수는 있는데, 자기연민은 나 스스로를 나와 제일 친한 친구처럼 대하는 거예요."
제일 친한 친구처럼 대해보라고? 이것 역시 그래본 적이 없었다.
자기연민(Self-compassion) 개념을 만든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 박사는 자기연민을 혼자 해 볼 수 있는 워크북을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그중 첫 번째 활동을 가져와봤다. 지금 해보자.
(https://self-compassion.org/exercise-1-treat-friend/)
1. 나와 가까운 친구가 힘든 일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친구에게 어떻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최대한의 노력을 써서 친구한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그 말들을 종이에 적어보자. 말할 때의 톤, 분위기도 같이 적어보자.
2. 내가 힘든 일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나는 스스로에게 어떻게 이야기할까? 무슨 말을 할지, 어떤 톤으로 이야기할지, 분위기는 어떨지 적어보자.
3. 1번과 2번의 차이가 있는가? 차이가 있다면 왜 그랬을지 이유를 적어보자.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 다르게 나타났을까?
4. 내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도 말하려면, 나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나는 1번을 할 때는 몰랐는데, 2번을 할 때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마치 악독한 사장처럼 느껴졌다. 내 자아를 구석에 몰아넣고 주눅 들게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공황발작이 왔을 때도 그랬다.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었는데, 오히려 그 발작 순간에도 나는 나를 다그쳤고 비난했다. 상황이 악화되는 건 당연한 일 같았다.
자기연민을 배우고 나서 나는 달라졌다. 내 자아를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기로 했다. 지쳐있으면 쉬어도 된다고 말했고, 작은 일이라도 성취했으면 나를 칭찬했다. 특히 공황장애에서 회복하려고 여러 가지를 도전할 때는 응원하고 칭찬해 주었다. 붐비는 지하철을 잘 타고 내렸을 때 "역시 나는 할 수 있어. 잘 참아냈어." 스스로에게 외쳤다. 내 자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만만해하는 듯했다.
내가 직접 효과를 느꼈던 것처럼 자기연민은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크리스틴 네프 박사는 2023년 논문1을 통해, 자기연민은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를 개선하고 감정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줘, 긍정적인 태도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이혼, 폭행, 성폭행,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심리적 어려움에서 회복력을 준다는 연구결과들도 같이 소개했다.
심지어 어떤 연구2에서는 5일 동안 스스로에게 자기연민 편지를 쓰게 했더니 3개월 간 우울도가 낮아졌으며, 6개월간 행복도가 높아졌다고 보고했다. 단 5일간 만이라도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잘 대해주면 내 삶의 행복해진다. 일종의 '행복 자가발전'이다.
공황장애 이후 일상으로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도전과 좌절, 성공이 뒤따른다. 앞서 말한 '긍정경험'을 쌓기 위해서 수많은 도전이 필요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자기연민이다. 자아가 도전할 때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성공했다면 그 누구보다 기뻐해주고 칭찬해주어야 한다. 실패했다고 해서 자책하지 않는다. 그까짓 거 다시 한번 도전하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나를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겠는가. 자기연민의 마음으로 나를 아껴주고 보듬어주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자.
1. Neff KD. Self-Compassion: Theory, Method, Research, and Intervention. Annu Rev Psychol. 2023 Jan 18;74:193-218. doi: 10.1146/annurev-psych-032420-031047. Epub 2022 Aug 12. PMID: 35961039.
2.Shapira LB, Mongrain M. 2010. The benefits of self-compassion and optimism exercises for individuals vulnerable to depression. J. Posit. Psychol. 5:37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