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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by 한량돈오
주권_ChatGPT Image 2025년 9월 14일 오후 10_07_30.png


헌법 제60조 제1항은 대통령이 조약을 체결할 때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 조약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중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이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국회의 동의를 얻은 대통령이 주권을 제약하는 조약을 체결ㆍ비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탓입니다.


주권은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권력으로서 다른 권력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대외적으로는 독립의 권력으로서 외부의 권력에 종속하지 않습니다. 일부의 제약이니까 괜찮은 걸까요? 1905년 을사늑약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 제국에 양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약은 양국이 대등한 위치에서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체결한 것이지만, 늑약은 비합법적이고 강압적인 상태에서 맺은 ‘약속’입니다. 양국이 대응한 위치에서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어느 한쪽의 주권을 제약하는 ‘약속’은 늑약 아닌 조약인가요?


오늘날 여러 나라는 사실상 주권의 제약을 받는 면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관세 협상은 평화적인 합법적인 방식으로 대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국제사회에서 당연한 일인가요? 주권의 평등성은 허상인가요?


정치적인 현실과 법의 규범은 조화하면서도 어긋나는 건 당연한 면이 있지요. 법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는 없으니까요. 미리 헌법에 그걸 예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강도가 들어오면 나의 의사로 내 물건을 소유권을 넘겨줄 수 있다고 미리 공언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1948년 제헌헌법 제42조에 따르면,“국회는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통상조약, 국가 또는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과 선전포고에 대하여 동의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은 예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1960년 헌법도 같습니다.


1962년 헌법에서는 약간 변화가 있습니다. “제56조 ①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통상조약, 어업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외국군대의 지위에 관한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②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하여도 국회는 동의권을 가진다.” 역시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습니다. 1972년 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 헌법에서 비로소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이라는 표현이 보입니다. “제96조 ①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②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하여도 국회는 동의권을 가진다.” 왜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이 들어갔는지는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개정한 현재의 1987년 헌법에서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을 그냥 둔 까닭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전시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령부에 있는 건 다 아시죠? 전시작전통제권은 국민의 안전을 최후에 무력으로 방어하는 핵심 권력입니다. 주권의 핵심 요소 중 하나죠. 언제 한국은 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어떻게 상실한 걸까요?


1950년 6월 29일 맥아더는 작전권의 이양을 요구했습니다. 이승만은 1950년 7월 15일 “현 작전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국제연합군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에게 이양한다.”라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같은 날 맥아더가 이 서한을 수신하고 7월 16일 작전지휘권 인수의사를 밝히는 수락 공한을 회신했습니다. 7월 18일 미 대사 무초를 통해 이승만이 이 공한을 수신함으로써 한국전쟁 중의 군 작전지휘권이 연합군사령관에게 이양되었습니다. 국회의 동의는 없었습니다.


일부 학자는 헌법에 따라 합헌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전시라서 절차를 지킬 수 없음은 당연하다고 보기도 하며, 나중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합의하는 과정이 있었으므로 추인한 것이라는 등 다양한 논거가 있습니다.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 합동참모의장에게 환수되었고, 지금은 전시작전통제권만 한미연합사령부에 남아 있습니다. 2006년 한미 양국은 2012년 4월 17일부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합의했으나, 이후 여러 차례 연기되었습니다.


지난 8월 265일 트럼프가 주한미군기지 소유권을 원한다고 발언했는데요.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그럴 리야 없겠지만,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이라면서 주한미군기지 소유권을 일정 기간 인정하는 ‘합의’를 한다면, 헌법적으로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헌법재판소는 위헌이라고 결정할까요? 고도의 정치적 결정이 필요한 사건이라고 판단을 회피할까요?


전시작전통제권도 넘겨주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에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이 가능하다는 근거도 있으므로 속수무책인 걸까요? 국민이 주권자라고 주장한다고 한들 국민은 어떻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요? 저항하는 집회를 하는 것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걸까요? 선거로는 주권 행사가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헌법과 주권은 어떤 관계인가요? 이번 주제의 글은 많은 질문을 던지는 걸로 마치려 합니다. 어떻게 해야 헌법 물신주의를 벗어날 수 있을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ChatGPT에게 “주권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줘”라고 했더니, 위의 이미지를 만들었네요. 국민은 보이지 않네요. 그게 현실인가요?


국민주권_ChatGPT Image 2025년 9월 14일 오후 10_13_29.png


그래서 다시 "국민주권은?"하고 물었더니 바로 위의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주권 앞에 "popular"를 쓴다고 국민주권이 성립하지는 않겠죠. 헌법도 조문만 바꾼다고 될 일은 아닌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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