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개념과 간략사(簡略史)

by 한량돈오

시민 관점에서 헌법 주해(注解)를 만들어보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법률 용어 탓이 상당할 듯합니다. 서른 번째 마지막 글로 헌법 주해의 첫머리를 소개합니다. 꼬리를 물고 다시 시작하는 의미에서요.


1) 헌법은 인민이 정한 절차를 통한 합의에 따라 기본적 인권의 목록을 비롯하여 국가의 구성․조직․운영․통제․책무에 관한 사항을 정하여 규범 체계로 구성한 법이다.


2) 헌법은 영어의 “constitution”과 독일어의 “Verfassung”의 번역어다. 단어 자체의 의미는 조직․구조․체제라는 뜻인데, 국가와 결합하여 국가의 조직, 구조, 체제를 의미한다.


3) 헌법은 본래 국가의 조직, 구조, 체제, 즉 통치 구조를 정한 법이다. 헌법에 기본적 인권의 목록이 등장한 것은 서구에서 근대 이후 성문헌법에서다.


4) 기본적 인권의 목록은 주체와 시공간의 확장성을 본질적 징표로 한다. 기본적 인권의 축소와 역진(逆進)은 불가하다. 통치 구조는 헌법기관 또는 국가기관의 제한성을 본질적 징표로 하면서, 민주주의의 확장 가능성을 내포한다.


5) “구체적 실정 헌법이 적어도 시민 헌법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한, 헌법에는 반드시 정치적 지배의 합리적 수단이라는 측면과 피치자의 권리 투쟁의 성과라는 측면이 아울러 내재하고 있다. 전자에 대응하는 것이 통치 기구에 관한 규정이요, 후자에 대응하는 것이 기본권 관계 조항이라고 한다면, 양자 간에는 필연적으로 상호 긴장의 관계가 성립되기 마련이다”. (국순옥, 기본권과 통치구조, 「공법연구」, 제11권, 85-86쪽.)



6) 헌법학은 성문헌법(成文憲法)을 비롯한 헌법 관련 현상을, 법해석학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방법론을 동원하여 연구하는 학문 분야다.


7) 성문헌법은 헌법으로 정한 사항의 내용을 명확히 하기 위해 문서 형식으로 헌법 규범의 내용을 문자화하고 조문화하여 표현한 헌법이다. 서구의 근대 이후 주요 국가의 헌법은 성문헌법의 형태로 존재한다.


8) 헌법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권력의 민주적인 구성․조직․행사․통제를 담보하는 것이다.


9) 헌법 해석은 헌법의 적용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 규범의 객관적 의미 내용을 이론적․기술적으로 조작하여 확정하는 인식 작용이다. 성문헌법의 문언과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해석의 한계다.



10) 근대 시민 헌법은 봉건제에서의 신분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배 권력을 분산하여 인권과 자유주의 헌법 이념에 복무하게 했다. 16세기에 태동한 종교개혁․자연권․저항권 사상과 운동은 인권 헌장과 성문헌법으로 이어졌다. 1776년 6월 12일 미국 「버지니아 권리장전」, 1789년 8월 26일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등이 대표적이다.


11) 현실에서 ‘인간’은 여성과 노동자를 제외한, 유산계급의 장년 남성이었다. 자본주의 체제 위에서 사유재산 권력이 위력을 발휘했다.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폭력과 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폭력 등 민중들에게 인간과 시민으로서 권리와 처우를 부정하거나 감축했다.


12) 20세기 이후 현대 헌법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따른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사회복지 이념을 지향한다.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노동하고 착취당하는 인민의 권리선언」 그리고 사회주의헌법으로 이어졌다. 노동법제와 사회보장법제 그리고 경제법제가 성립했다.


13) 20세기 전반에 일어난 두 번의 세계대전과 파시즘 체제는 신분․경제의 속박에 더하여 전쟁과 폭력의 속박 문제를 제기했다. 그것을 뚫고 ‘인간의 존엄’과 ‘국제 평화’ 개념과 사상이 핵심 관념으로 등장했다.


14) 국제인권법은 개인과 집단이 가지는 권리가 해당 주체가 소속 국가의 정부로부터 침해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보장하도록 하는 법이다. 1945년 10월 「유엔헌장」,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1966년 12월 16일 「유엔 인권 규약」을 채택했다. 그 밖에도 다양한 국제 인권 조약이 존재한다.


15) 인권은 아직도 국가 단위의 영토를 넘어서지 못했다. 국제사회는 국가와 자본의 권력에 속박되어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역사적으로 인권은 신분 특권 없는 시민의 투쟁, 생산수단에서 소외된 노동자의 투쟁, 남성 중심 사회에서 배제된 여성의 투쟁을 거치면서 ‘인간’의 권리에 조금 채워졌을 뿐이다.


16) ‘인권’이 ‘인간의 권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여성과 더불어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까지 아우르는 사람들의 해방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민주주의 역사 또한 유산자 계급의 과두정(寡頭政)을 넘어 보통선거 제도까지 확장했지만, 참여민주주의와 숙의 민주주의로 심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7) 기후 위기 시대에 인권과 헌법 체제의 근본적인 과제는 인간 아닌 존재의 권리 보장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함께 공존할 지구의 생태의 자율적 조절 체제를 회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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