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폭염을 이겨내고 과꽃이 피었다.

by 마정열

과꽃은 국화목 국화과에 속하는 관속식물이다. 줄기는 곧추서며, 위쪽에서 가지가 조금 갈라지기도 하고, 높이 30~100cm다. 줄기 겉에 흰 털이 나며, 보통 자줏빛이 돈다. 잎은 어긋나며, 난형,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위로 갈수록 짧다. 꽃은 7~9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서 머리모양꽃이 1개씩 달린다. 머리모양꽃은 가장자리에 혀모양꽃이 자주색이고, 가운데 있는 관모양꽃은 노란색이다. 혀모양꽃은 암술만 있는 암꽃이다. 모인꽃싸개는 반구형, 조각이 3줄로 붙는다. 열매는 수과다. 숲 가장자리의 습한 곳, 초지, 시냇가, 길가 등에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개망초속 식물들에 비해서 모인꽃싸개 조각들은 길이가 서로 같지 않은데 바깥쪽 것이 가장 길어서 다른 식물과 구분된다. 여러 가지 원예품종이 개발되어 전 세계에 보급되어 관상용으로 심는다. 한반도 북부지방에서는 자생하나 남한의 각지에서 심어 기른다. 세계적으로 중국, 몽골, 일본 등에 분포한다.(출처:국립생물자원관)


이름이 왜 '과꽃'이 됐을까? 그럴듯하게 설명해 주는 자료는 없다. 학자들은 과꽃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미상이라고 적어 놓기도 하였다.(이우철, 한국식물명의 유래, 일조각, 81면 참조)


국어사전을 보면 ‘국화 모양의 물건을 찍어내는 쇠나 나무로 된 판’을 ‘과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전에 즐겨 먹었던 국화빵의 틀도 '과판'이다. ‘여자 머리에 꽂는 국화 모양의 장식이 달린 뒤꽂이’도 ‘과판’이라고 부른다. 이 과판은 국화(菊花)+판(板)의 합성어로 국화의 옛말이 구화이므로 구화판으로 발음되었고 축약되어 과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과꽃은 국화 + 꽃의 합성어로 국화를 닮은 식물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모양도 국화과의 꽃 모양을 하고 있다. 가운데 노란 통꽃을 두고 여러 색의 혀꽃들이 둘러싸는 모양이다.


'과꽃'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려주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먼 옛날 백두산의 깊은 산골짜기에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추금이라는 한 과부가 있었다. 그 집 앞 뜰에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흰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들을 가득 심어 놓았다. 그 꽃이 필 때마다 추금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린 남편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젖곤 하였다.
어느 날 마을의 매파(중매쟁이)가 추금에게 재혼할 것을 권유하였다. 끊임없는 매파의 설득을 받고 이 젊은 과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뜰에 핀 하얀 꽃들이 하나둘씩 갑자기 분홍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추금은 꽃을 살펴보기 위해 꽃밭으로 나갔다. 그런데 뜻밖에 꽃밭에는 죽은 남편이 나타나서 미소를 짓고 서 있는 게 아니겠는가?

"부인! 내가 다시 돌아왔소!"
추금은 생각지도 못했던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따뜻한 품에 안겼다. 이후 추금 부부는 아들과 함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해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모든 풀과 나무가 말라죽어갔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추금 부부도 마을을 떠나야 했다.
"여보! 넓은 만주땅으로 갑시다. 그곳은 가뭄이 들지 않았다고 하니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게요. 그곳으로 가서 농사를 지읍시다."
추금은 아끼고 보살폈던 꽃 중에서 흰색과 분홍색의 꽃을 한 그루씩 캐어 소중히 싸 들고 길을 나섰다. 그들은 만주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었다. 그 후 세월은 10년이 흘렀다. 고왔던 추금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어린 아들도 이제는 어엿한 장정이 되어 곧 결혼도 시켜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뒷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던 아들이 독사에게 물려 갑자기 죽고 말았다. 추금 부부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남편이 말했다.
"여보! 여기서 살면 죽은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할 테니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추금도 남편의 뜻에 따라 아들의 시신을 뜰의 꽃밭에 묻어주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옛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들은 이미 늙어 다시 자식을 낳을 수는 없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금실이 더더욱 좋아졌다.
어느 날 추금은 남편을 돕기 위해 나무를 하러 가는 남편을 따라 길을 나섰다. 부부가 산에 이르러 나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절벽 위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 한 송이가 추금의 눈에 띄었습니다. 추금은 그 꽃을 몹시 갖고 싶었다. 그러자, 남편이 아내를 위해 그 꽃을 꺾어 오려고 절벽을 기어 올라갔다. 그러나 남편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앗!"
추금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 엄마!"
추금은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났다. 그런데 산속에 있어야 할 자신이 뜻밖에도 자신의 방안에 누워 있는 게 아니겠는가? 추금은 그제야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든 것이 꿈임을 안 추금은 뜰로 나가 꽃을 살펴보았다. 밤 사이에 하얀 꽃들은 분홍색으로 더 많이 변해 있었다. 추금은 비로소 깨달았다.
"흔들리는 내 마음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죽은 남편이 꿈에서나마 일생을 같이하며 죽었구나!"
추금은 그동안 매파로 인해 흔들렸던 자신을 반성하고는 마음을 더욱 굳게 하였다. 그 후 훌륭하게 성장한 아들은 무과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났다.

그런데 이때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추금을 납치해 가버리고 말았다. 추금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매우 미모가 뛰어났기 때문에 오랑캐 두목은 그녀를 아내로 삼으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추금은 끝내 거절하였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두목의 집이 그 옛날 추금이 꿈속에서 남편과 함께 살던 만주의 바로 그 집이었던 것이었다. 두목은 완강히 거절하는 추금을 방에 가두어 놓고 매일 찾아와 열쇠를 주며 아내가 되어 달라고 졸라댔다. 그러나 추금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열쇠 뭉치를 밖으로 내던지며 두목의 청을 거절했다.
이때 무과에 급제한 아들이 한양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오랑캐에게 끌려갔다는 사실을 안 아들은 병사들을 이끌고 어머니를 구출하기 위해 만주 땅으로 갔다. 아들은 마침내 어머니가 갇혀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곳을 밤에 급습하여 무사히 어머니를 구출해 냈다. 이때 추금이 아들에게 말하였다.
"이 집은 너의 아버지께서 끝까지 나를 지켜주신 집이다."
추금은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아들에게 소상히 들려주었다. 그리고 뜰로 나간 추금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열쇠를 내던졌던 곳에 보랏빛의 꽃이 피어 있었다. 추금은 그 꽃들을 캐어 품에 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아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다.
그 후 사람들은 추금의 집 앞마당에 피어있는 그 보랏빛 꽃을 과부를 지켜 준 꽃이라 하여 '과꽃'이라 불렀다.


그러나 과꽃을 보고 과부의 정절보다는 누이가 더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과꽃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 노래 때문인 거 같다.


과꽃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

꽃 속에 누나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 지 온 삼 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과꽃’은 어효선의 동시(童詩)에 권길상이 곡을 붙여 1957년에 만든 동요이다. ‘과꽃’은 시집간 지 3년 되는 누나를 그리워하면서 이 가을에 오지 않을까 하는 아이의 기대를 담고 있다. 그래서 ‘과꽃’에서는 더 희망적인

그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도 누나가 있다. 무려 두 분의 누이가 있다. 누이를 생각하면 아련한 아픔이 밀려온다. 신산스러운 삶을 산 큰 누이도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작은 누이의 삶도 속을 들여다보면 그리 순탄한 삶은 아니었다.


사직공원의 위쪽에 도서관이 있었다. 내가 처음 가본 공공도서관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작은누이를 따라 도서관에 갔다. 공부는 안 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누이와 함께 홍은동 집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누이는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집에 가까이 오자 나는 누이가 들었던 내 가방을 가로채 들었다. 철이 없어 즐거운 시절이었다.

봄이었다. 그때 사직공원에 벚꽃이 피어 있었을까?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누이는 회사 경리를 하다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상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매형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누이는 경제적으로 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것이 미안했는지 누이는 매형에게 늘 죄지은 사람처럼 기죽어 지냈다. 나는 그게 싫었다. 그리고 매형은 돈 많은 사람의 행세를 하듯 우리에게 무례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매형은 뇌졸중으로 몇 해를 고생하다가 돌아가셨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다. 장마와 폭염을 이겨내고 과꽃이 피었다. 과꽃은 이 여름을 견디고 가을까지 꿋꿋이 피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이도 격정의 여름을 보내고 선선한 바람에 조찰히 향기를 퍼뜨리는 과꽃의 모습으로 인생의 가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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