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진달래는 수줍은 여인 같다. 응달에서 가냘픈 꽃잎을 하늘거리는 모습은 눈물로 님을 보내고 떠나간 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이 연상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열심히 배운 학교 교육의 영향 때문일까?
이에 비해 4월의 진달래는 화사하다. 3월의 진달래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수줍은 꽃이라면 온 산을 물들이는 4월의 진달래는 어찌 보면 붉은 절규 같다.
1.
옛 중국의 촉(蜀)에 두우(杜宇)라는 천신(天神)이 있었다. 너무도 인간을 사랑하여 하계(下界)에 내려와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 후에 백성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촉의 왕이 되어 망제(望帝)라 불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홍수(洪水)라는 커다란 고민거리가 하나가 있었다. 궁리 끝에 별령(鼈靈: 자라의 神)을 재상에 앉히고 홍수를 다스리도록 했다. 과연 별령은 신통력을 발휘해 홍수를 다스렸고 망제는 왕위를 물려주고 서산(西山)에 은거했다. 그러나 왕이 된 별령은 그만 두우의 아내를 차지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두우는 하루 종일 울기만 했다. 마침내 지쳐 죽게 되었는데, 그때 두견새에게 말했다.
"두견새야! 내 대신 울어서 나의 심정을 사람들에게 전해 다오."
망제의 유언을 들은 두견새는 즉시 촉으로 날아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를 토하면서 울어 댔다. 어찌나 구성지게 울었던지 촉의 백성들은 두견새 소리만 들으면 죽은 망제를 그리워하며 더욱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두견새가 토해낸 피가 묻어 붉게 물든 꽃이 바로 진달래꽃이다.
2.
촉나라에 두우라는 왕이 있었는데 제호를 망제(望帝)라 하였다. 어느 날 그는 문산의 강가를 지나다가 한 시신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건져내자 시신은 다시 살아났다. 이상히 생각한 망제는 그를 데리고 대궐로 돌아와 사유를 물은즉, 그는 "저는 형주 땅에 사는 별령이라는 사람으로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졌는데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마음이 약했던 망제는 이는 필시 하늘이 보내 준 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별령에게 정승 벼슬을 주어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러나 별령은 본시 음흉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예쁜 딸을 망제에게 바쳐 환심을 산 뒤, 곧 궁중의 사람들과 대신들을 매수해서 망제를 대궐에서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일조일석에 나라를 빼앗기고 돌아갈 곳을 잃은 망제는 그 원통함과 한을 삭이지 못한 채 죽게 되었는데, 그 후 대궐이 보이는 서산에는 밤마다 두견새 한 마리가 날아와 슬피 울었으므로 촉나라 사람들은 이 새를 망제의 넋이 환생한 것이라 여기고 이를 '귀촉도' 혹은 '두견(杜鵑)', 혹은 '불여귀(不如歸)' 혹은 '망제혼(望帝魂)'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귀촉도란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이요, 두견이란 두우에서 나온 이름이요, 불여귀란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요, 망제혼이란 망제의 죽은 혼이라는 뜻이니 이 모두는 두우의 이야기에 관련된 것들이다.
두견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를 토하면서 울어 댔다. 두견새가 토해낸 피가 묻어 붉게 물든 꽃이 바로 진달래꽃이다. 그래서 진달래꽃을 두견화라 부르게 된 것이다.
3.
촉의 임금이 된 이는 두우(杜宇)라는 사람이다. 그는 어느 날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그런데 동시에 강가의 우물에서 리(利)라고 하는 여인이 솟아 나와 둘은 부부가 되었다. 백성들은 두우를 곧 네 번째 임금으로 맞이하였으니 그가 곧 망제(望帝)이다. 망제가 다스린 지 백여 년쯤 되었을 때였다. 촉나라의 동남쪽 형(荊) 땅에 별령(鱉靈)이라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시체를 찾을 수 없었다. 시체는 강물을 거슬러 촉나라까지 흘러와서 소생하였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망제는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이때 옥산(玉山)이라는 산이 물길을 막아 큰 홍수가 났다. 그것은 마치 요 임금 때 중원 전체를 휩쓸었던 대홍수와 같은 재난이었다. 백여 년 동안 잘 다스려왔던 망제도 이러한 사태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별령이 물에 익숙했던 사람임을 생각해 내고 그로 하여금 옥산을 뚫어 물길을 터놓도록 하였다. 별령이라는 이름이 자라의 혼이라는 뜻 아닌가? 별령은 망제의 명을 받고 홍수를 다스리러 떠났다.
그런데 별령이 떠난 후 망제 두우는 평소 마음에 두었던 별령의 아내를 유혹하였다. 둘은 마침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고 알았다. 별령은 숱한 고난 끝에 옥산의 물길을 뚫어 홍수를 진정시켰다. 백성들의 환호성 속에 별령은 개선장군처럼 수도로 귀환하였다. 별령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본 망제는 내심 자신이 한 짓을 생각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별령은 백성들을 위해 저토록 큰 일을 했는데 자신은 신하의 아내와 밀통(密通)이나 하고 있었다니!
부끄러움과 회한(悔恨) 끝에 망제는 큰 공을 세운 별령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서산(西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그러나 숨어 산다고 해서 자책은 덜하지 않았다. 어느 날 홀연 그의 몸은 두견새로 변하였다. 새로 변해 훨훨 날아 부끄러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까? 봄에 우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망제의 회한을 대변하듯 구슬펐다. 촉나라의 백성들은 두견새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래도 한때는 명군이었으나 한번 실수로 모든 것을 잃고 만 망제의 신세를 생각하고 슬픔에 잠겼다 한다.
전설은 여러 버전이 있다. 진달래 전설도 마찬가지다.
신하에게 왕위와 아내를 빼앗긴 한은 원통하고, 신하의 아내를 범한 회한은 수치스럽고 부끄럽다. 어떤 전설이건 진달래의 핏빛은 슬픔이고 한(恨)이다.
전설만 한(恨)이겠는가? 우리의 현실도 그러한 것 같다.
4월은 아픈 역사의 계절이다. 그래서 화사한 진달래가 더 슬프다. 유난히 붉은 꽃잎이 누군가의 핏빛 같다.
4.3 제주의 아픈 기억, 4.19 피로써 이룩한 민주화의 기록, 그리고 아! 4.16 수장된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
그들이 흘린 4월의 핏방울이 붉은 진달래로 피어난 걸까?
역사의 제단에 바쳐진 피.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
4월의 진달래는 우리에게 그 상처를 잊지 말라고 저리도 붉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