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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Aug 16. 2020

오래된 친구의 엽서처럼 가을이

2020.8.16.일


폭염 속 우리 집 꽃밭도 초토화 됐다.

이파리들은 다 처지고 간신히 서 있다. 하지만 그늘에 있는 녀석들은 팔팔하다.

쳐져있는 녀석들도 그늘이 내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지개를 켠다.



사람보다 낫다. 사람들은 한 번 처지면 며칠은 가지 않는가. 오늘 하루 종일 비몽사몽 중이다. 벌써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는데 눈거풀은 자꾸 내려온다.

4시30분 저녁 약속이 있어서 버티고 있는 중. 삼겹살을 실컷 먹여준단다. 내가 하지않은 밥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다.


어제 대형사고 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무도 내게 뭐라하지 않았지만 자괴감이 든다. 나라는 인간이 고작 그것밖에 안되는가 싶어서 살짝 우울하고 슬프다. 삼겹살 잔뜩 먹고 풀어버려야지.


동틀 무렵, 집 앞의 하늘


한낮은 숨이 막히게 더워도 새벽 다섯 시 무렵의 바람은 적당히 시원하고 감미로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썹달이 떠 있었다. 이러다가 오래된 친구의 엽서처럼 가을이 소문도 없이 다가올 것이다.

가을이면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갈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그  바램도 지금으로서는 안갯속이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 축복이었음을 새삼 깨닫는 오후 3시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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