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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Aug 17. 2020

심청이로 빙의함

2020.8.17.월

모듬 돼지구이 한접시와 양파, 열무물김치, 콩나물로 점심 해결. 어제 저녁 모임에 안 간 남편의 몫으로 모임의 주최자가 생고기 한 접시를 챙겨주셨다.

그전 같으면 가서 좀 먹고오면 어때? 서로 번거롭고 미안하게 이게 뭐야?, 라며 잔소리 한 소절 읊었을텐데 그냥 고기를 굽고 반찬들을 꺼내 점심을 먹었다.

사람 만나는 것도, 밖에서 밥 먹는 것도 별로인 남자다. 요즘의 사회적 분위기에 맞춤형으로 타고난 취향이다. 강의도, 회의도, 모임도 다 축소되고 취소되는 분위기니 자발적 거리두기가 체질에  맞다고 좋아한다. 가벼워지는 주머니 사정은 고려안하고? 눈을 흘키고 싶지만 그것도 패스 한다.


어제 저녁 식당 앞 바다 풍경들


여튼 심청이처럼 내가 돌아다니며 얻어서 거둬먹이기도 한다. 그저께는 지인이 삼계탕을 많이 끓였다고 가져가라해서 냉큼 가서 두 통이나 가져왔다.

이 눈 멀쩡한 심봉사 빙의 아저씨는 점심을 먹자마자 "아, 저녁은 또 뭐 먹나?!" 탄식인지 환호인지 모를 영탄문을 내뱉는다.

나도 더위를 먹었는지 소리를 질러야 할 타이밍에 극존칭으로 "뭐가 드시고 싶으세요?" 하고 말았다.



오늘 36도를 찍고 계속 기온은 올라서 모레는 39도를 예보하고 있다.

이번 주간 내에 읽어야 할 책은 진도 안나간다. 여자의 영역을 구축하고자, 그래서 지탄받고 피 흘릴 수 밖에 없었던, 자유분방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오늘의 심청이는 읽어내기가 힘이 든다. 도대체 속에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있어야 이런 삶을 살아내나 싶다.


수전 손택과 책상


큰 책상은 두고 오늘은 이동식 책상,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우리집에서 제일 시원한, 시력 좋은 심봉사 방 앞에서 다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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