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동안 아들이 살던 빌라가 팔렸다. 아들의 이름으로 된 첫 집이었고 작긴 하지만 마음에 들었는데 몇 번이나 더 이곳에 올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좀 오래되었지만 평수는2배나 넓은 곳으로 가게되었다. 아기 때문에 좀 더 너른 곳으로 가고 싶어서부지런히 집을 찾더니 꼭 맞는 집을 샀다고 좋아한다. 가격이 저희들 형편에 힘겹긴 하지만 열심히 돈을 모아보겠다고 한다. 세입자가 있어서 내년 연말이나 되어야 들어갈 수 있단다. 그동안 일 년여 옹색한 생활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서울에 가다보면 저렇게 집들이 많은데 왜 집 없는 사람은 날로 늘어가는지...한숨을 깨물곤 한다.
갇혀지내던 꼬맹이는 아침에 뽀로로 가방을 매고 기어이 가출을 시도했다. 지하에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데 데려갔더니 잠깐 사이 지상으로의 탈출 감행. 집 근처에서 쫑쫑거리더니 수퍼 쪽으로 방향을 잡곤 막무가내다.
"빵이야, 마스크 해야지!" 하며 입을 가리켰더니 자기 입을 만져본다. 없다. 두말 않고 집 쪽으로 돌아선다. 마음 짠하다. 무슨 이런 세상이 있나? 이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나는 오전에 아기가 일어나기 전 잠깐 시집을 읽었다. 한 달에 두세 편은 시조를 쓰리라 계획했지만 손을 놓고 있는 사이 팔월엔 한 편도 쓰지 못했다. 시집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나는 그래도 '읽는 인간'의 DNA를 타고 난 것 같아서 감사하다. 노후에 무얼할 건가 고민할 필요도 없다. 걸어서 도서관에만 갈수 있으면 된다. 꿈이 참 저렴하고 착하다. 근데 남편은 나의 꿈에 대해 시큰둥하다. 평생 읽고, 쓰고, 말하며 살아온 남편은 은퇴하는 순간 책과의 이별을 꿈꾸고 있어서일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아기가 자는 시간, 말들의 풍경을 들여다볼거나!오늘 주어진 내 몫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