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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Aug 28. 2020

말들의 풍경을 읽는 시간

2020.8.28.금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내가 있는 동안 아들이 살던 빌라가 팔렸다. 아들의 이름으로 된 첫 집이었고 작긴 하지만 마음에 들었는데 몇 번이나 더 이곳에 올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좀 오래되었지만 평수는 2배나 넓은 곳으로 가게되었다. 아기 때문에 좀 더 너른 으로 가고 싶어서 부지런히 집을 찾더니 꼭 맞는 집을 샀다고 좋아한다. 가격이 저희들 형편에 힘겹긴 하지만 열심히 돈을 모아보겠다고 한다. 세입자가 있어서 내년 연말이나 되어야 들어갈 수 있단다. 그동안 일 년여 옹색한 생활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서울에 가다보면 저렇게 집들이 많은데 왜 집 없는 사람은 날로 늘어가는지... 한숨을 깨물곤 한다.



갇혀지내던 꼬맹이는 아침에 뽀로로 가방을 매고 기어이 가출을 시도했다. 지하에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데 데려갔더니 잠깐 사이 지상으로의 탈출 감행. 집 근처에서 쫑쫑거리더니 수퍼 쪽으로 방향을 잡곤 막무가내다.

"빵이야, 마스크 해야지!" 하며 입을 가리켰더니 자기 입을 만져본다. 없다. 두말 않고 집 쪽으로 돌아선다. 마음 짠하다. 무슨 이런 세상이 있나? 이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나는 오전에 아기가 일어나기 전 잠깐 시집을 읽었다. 한 달에 두세 편은 시조를 쓰리라 계획했지만 손을 놓고 있는 사이 팔 월엔 한 편도 쓰지 못했다. 시집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그래도 '읽는 인간'의 DNA를 타고 난 것 같아서 감사하다. 노후에 무얼할 건가 고민할 필요도 없다. 걸어서 도서관에만 갈수 있으면 된다. 꿈이 참 저렴하고 착하다. 근데 남편은 나의 꿈에 대해 시큰둥하다. 평생 읽고, 쓰고, 말하며 살아온 남편은 은퇴하는 순간 책과의 이별을 꿈꾸고 있어서일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아기가 자는 시간, 말들의 풍경을 들여다볼거나! 오늘 주어진 내 몫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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