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숙 Sep 21. 2020

올챙이의 꿈

2020.9.21.월


시조를 쓰게 된 계기는 그동안 찍어둔 내 사진을 설명할 한 줄이 절실해서였다. 사실 잘 찍은 사진은 설명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글을 잘못 갖다붙이면 사족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나는 하이쿠처럼 촌철살인의 짧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하여 사진도 돋보이고 글도 음미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나의 욕심이었다.


주위에 수소문하여 한 달에 두 번 모여서 시를 고 시조도 쓰는 모임이 있어서 찾아갔다. 그러기를 일 년여 지났을 때 그만 신춘문예에 덜컥 붙어버렸다. (얼마나 놀랬는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 시 창고에 아무 것도 없는 시인이라니. 그때부터 부지런히 읽었다. 혼자 숱하게 좌절하면서.


오늘도 읽는다. 시력 자그마치 40년이 되신다는, 내가 좋아하는 시조시인 박기섭 선생님의 신간 《오동꽃을 보며》를 읽는 중이다. 시력 4년 차 왕초보는 가슴이 뛴다.

세월이 한참 건너가면 나도 아름다운 시조를 쓸 수 있으려나, 올챙이가 꾸는 꿈이다.


사십여 년 전 내가 처음 산 사진책. 아닌 척 묻어두고 지났지만 그때부터 사진을 하고 싶었나보다.


오동꽃을 보며

                                                        박기섭


이승의 더딘 봄을 초록에 멱감으며

오마지 않은 이를 기다려 본 이는 알지

나 예서 오동꽃까지는 나절가웃 길임을


윗녘  윗절 파일등은 하마 다 내렸는데

햇전구 갈아 끼워 불 켜든 저 오동꽃

빗장도 아니 지른 채 재넘잇길 열어놨네


하현의 낮달로나 나 여기 떠 있거니

오동꽃  이운 날은 먼데 산 뻐꾸기도

헤식은 숭늉 그릇에 피를 쏟듯 울던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뒷모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