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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04. 2020

나도 때로는 우렁 각시가  있었으면 좋겠다

2020.10.4.일


밭에서 세 번에 걸쳐 캐온 고구마를 선별해 박스에 넣어서 방에 들여놓았다. 올해 과일 채소값이 만만찮은데 고구마도 값이 비싸단다. 겨우내 간식으로 먹으면 되겠다. 마트에 갈 때마다 만원 단위로 포장해놓은 고구마를 들었다놨다 했는데 당분간 그 저울질은 안해도 되겠다.


며느리가 까주고 간 마늘을 씻어서 편을 떠서 말리고 있는 중이다. 말려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요리할 때 꺼내쓰면 된다. 아직 덜 깐 나머지는 갈아서 냉동시킬 참이다.



선물로 들어온 인삼도 잔뿌리는 잘라서 꿀에 재우고 굵은 뿌리는 역시 편을 떠서 말릴 참이다. 이렇게 한 번에 말려놓고 삼계탕 끓일 때 아낌없이 넣는다.


또 말려야 할 것은 양식이긴 하지만 몸값 비싼 송이다. 아이들 왔을 때 소고기랑 구워먹고 남았다. 말려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불고기나 된장찌개를 끓일 때 넣을 참이다.


아침부터 먹을 것 갈무리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나는 소식을 하는 편이라 이렇게 많은 먹거리가 필요하지 않다. 그때그때 조금씩 사먹으면 된다. 마지만 체질적으로 위의 기능이 좋은 남편은 남다른 소화력의 소유자이다. 한 번에 많이 먹진 않지만 자주 먹는 편이다. 먹는 양으로 따지면 나는 너무 억울하다고 가끔 다툴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써먹는 레파토리다. 고양이 만큼 먹고 황소처럼 일한다고 목소리를 높힌다. 사실 적게 먹긴 하지만 황소처럼 일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먹거리 장만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쓰는 건 억울하고 분하다.

아까부터 시조공부하는 단체톡에서 자꾸 톡이 온다. 모임을 하지 못하니 공부하다가 좋은 작품들을 톡으로 올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열심인데 나는 오늘 책 한 번 펼치지 못했다. 작품을 쓴 지도 까마득하다. 내 공부는 늘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도 속상하다.



먹고 있었네. 이웃에서 준 호박 네 덩이도 뭔가 조처를 해서 갈무리를 해야 버리지 않는다. 썰어서 말리던지 썰어서 냉동실에 넣어두던지 해야 한다. 그리고 솎은 열무는 다듬어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된장과 갖은 양념으로 무쳐내면 맛있다. 뽑아서, 다듬어서, 씻어서, 데쳐서, 다시 살짝 씻어서 된장, 다진 마늘, 깨소금, 참기름으로 조물조물. 참 쉽죠, 잉?(어금니 깨물고!)


그것 하고 나면 남편이 저녁상을 기다릴 시간이다. 밥솥에 밥이 없는고로 새로 해야 한다. 메뉴는 콩나물밥으로 정해두었는데 돼지고기도 고명으로 얹어달란다.


거기 어디 길 잃고 헤매는 우렁 각시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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