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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05. 2020

푸르른 날

2020.10.5.월


오일장에 갔더니 벌써 국화가 화분에 담겨 나와있었다. 남편이 상추 씨앗을 사겠다고 해서 따라 갔는데 지갑을 안가지고 왔단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어서 돈을 주었더니 집에 가서 줄게, 한다. 됐다, 그것 받는다고 부자 되겠나? 중년 부부의 영양가 없는 대화다.

언젠가 부부모임에서 어떤 이가 무인도에 딱 세 가지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무얼 가지고 가겠냐고 물었다. 불은 있어야지, 성냥? 노트북은 쓸 수 없겠지? 그럼 핸드폰도 안되겠네, 커피는 갖고 가야지. 담배도!, 만화책, 맥가이버 칼, 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들 한 마디씩 하느라 난리법석이었는데 점잖게 있던 남편이 난 마누라, 해서 좌중을 평정시켰다. 아내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게 좋겠수!, 하며 고소해 죽겠다는 얼굴을 했다. 난 어금니를 깨물고 우아하게 미소 지으면서 '무인도까지 따라가야겠니, 이 웬수야!' 했다. 물론 속으로.


장에 가는 내내 투명한 햇빛에서 챙챙 소리가 날 듯하다. 아름다운 가을날씨다. 코로나만 사라지면 이 햇빛과 바람을 마음껏 즐길수 있을텐데. 작은 배낭에 물 한 병, 빵 한 개, 사과 한 개를 넣고 한나절 걷고 나면 몸도 적당히 잘 마를 것 같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서정주의 싯구가 생각난다.

이맘 때쯤 여행한 스페인에서 본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떠오른다.


10월의 스페인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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