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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06. 2020

때로, 철수와 영희처럼

2020.10.6.화


폰으로 브런치 글을 읽고 있다. 며칠 전, 내가 쓴 글 - 좀처럼 놓여날 수 없는 먹거리 장만하는 과정을 늘어놓은 - 에 명쾌한 댓글을 달아주신 작가의 글이다. 댓글만큼이나 자신의 삶을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게 사는 모습을 명쾌하게 그려낸 글이다. 게다가 글의 호흡도 예사롭지가 않다.


하루 거의 남편과 나는 50 미터 반경 안에 있다. 당연히 자주 부딪힌다. 어제도 몇 마디 주고 받아서 나는 내방에서 두문불출 중이다.

어제 오후, 남편이 같이 자전거를 타자는 걸 내가 싫다고 했다. 그는 내 사정은 고려않고 같이 나가도 자신이 탈만큼 타야하는 사람이다. 취미를 일로 만드는 데는 선수다. 두어 번 따라나갔다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혼났다.

나는 갔다오면 쉬지도 못하고 저녁준비를 해야 한다. 앞의 사정이 여하튼 간에 저녁먹는 시간은 어김없이 제 시간이라야 한다.

남편은 세 시간을 매일, 나는 한 시간을 가끔 빼먹는 날도 있게끔 탄다.

방심하고 갑옷을 입지 않고 있었더니 화살이 날아왔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왔더니 나보다 늦게 들어온 남편이 물었다.

남편 : 오늘 자전거 탔어?

나 : 응

남편 : 앞바퀴 바람 빠져있던데?

나 : 그랬어? 몰랐는데...알았으면 바람 좀 넣어주지.

남편 : 자기꺼 자기가 관리를 하고 타야지.

나 : 바로 옆에 있는데 그것 좀 해주기가 싫었어?

치사하게, 난 어제 시장  따라가서 돈도 내줬잖아 하는 말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입을 닫아버렸다.


오늘 아침 회의 가는데 내 차를 쓰겠다더니 시동이 안걸린다고 들어왔다. 나가보니 잘만되는 걸. 내 눈치를 보며 자기 차가 아니어서 익숙치 않아서란다.

점심 무렵 집에 왔길래, 아저씨, 나도 자전거 바람 넣는 거 안 익숙하거든, 화살을 되쏘았다.


우리 부부도 철수와 영희처럼 가끔 갑옷을 입어야 한다. 오늘은 화살 맞은 핑계대고 계속 침대에 등을 대고 X-ray나 찍을 참이다.


어제 오후 석양, 어느 시인은 가을은 조금씩 제 살을 말리는 시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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