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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11. 2020

한 그릇 밥의 위로 1

2020.10.11.일


반월성, 교동을 산책하고 저녁을 먹으려고 경주에 왔다. 가까운 곳이라 한나절 정도의 시간 만으로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인데 몇 달만에 온 것이다.
오늘 동행은 서로 마음이 맞지않아 오랫동안 갈등하고 있는 부부다. 부인의 입을 통해 사정을 들었지만 그냥 한 해가 흘렀다. 나도 엄벙덩벙 살아가는 형편에 남의  부부사에 왈가왈부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나이도 나보다는 한참이나 적으니 자칫 주제넘거나 꼰대 소리 듣기가 십상이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겁나는 게 아니라 부부의 문제는 당사자만 해결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지금쯤은 당신의 상처를 나도 기억하고 있다는 정도의 표현은 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방법은 한나절 시간을 보내고 조금 비싼 밥을 먹는 것이다. 허기를 해결하는 일상적인 밥이 아닌 조금은 특별한 밥은, 어떤 의미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 낫다. 이것은 내 경험상의 일이다. 남편과 사별한 이에게, 남편과 이혼한 이에게 나는 이런저런 위로나 조언을 하는 대신 조용한 집에 가서 제일 비싼 밥을 함께 먹었다. 지금은 상처를 딛고 홀로 서기를 한 그들이 내게 제일 고마웠던 게 바로 상처는 건드리지 않고 밥을 함께 먹은 것이라고 했다. 오늘의 이 부부도 훗날 내게 그런 고백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은 해결책도 그 자신이 갖고 있다. 외부에서 열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3시에 만나서 경주로 함께 움직였다. 가끔 경주에 가곤 했는데 오늘처럼 사람이 많은 적은 없었다. 다행인 것은 모두 다 마스크를 잘 쓰고 있었다. 기약도 없이 집에만 있으라는 무리일 것 같다. 이대로 방역수칙을 지키며 가벼운 나들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밥을 먹고 나오니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로맨스가 서려있는 월정교의 야경이 가을 밤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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