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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17. 2020

백일장의 추억

2020.10.17.토

백일장 심사를 하러왔다. 백일장은 현장에서 시제를 받고 글을 써서 제출하면 바로 심사를 해서 당일날 결과 발표와 시상까지 다 끝낸다. 올해는 모이지를 못해서 온라인으로 접수를 했다. 시상식도 당사자만 참석하던지 생략할 가능성도 크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방법으로 살아가는 요즈음이다.



오래전 나도 백일장에 나간 적이 있었다. 십 년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은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이사를 감행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가 있었지만 평생 미련과 후회 속에 살고 싶지 않아 남편의 결정에 따랐다.

어느 날, 딸아이가 선생님이 피아노 렛슨비를 가져오란다고 했다. 몇 달 동안 한 번도 날짜를 어긴 적이 없건만 이번에 며칠 늦었다고 그새 아이에게 돈 얘기를 물려보내나 싶어 당황스럽고 속이 상했다.

내 눈치를 보고 있는 남편이 느껴졌다. 모른척 저녁밥을 먹고 함께 산책을 나갔다. 아파트 단지 근처를 지나다보니 벽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가서 보니 백일장 안내문이었다.
옆에서 풀이 죽어 있는 남편의 팔을 흔들었다.
"저거야, 나, 저거 할래!"

'산에 오른다. 새벽 안개 피어있는 산에 오른다. 청솔모 눈앞을 어지럽히며 달려가는 산에 오르면 나는 어느덧 꿈꾸는 자가 된다 '

로 시작하는 수필을 썼다.
장원이었다. 상금 삼십 만원을 받아 딸아이의 렛슨비를 내고 주위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낸 기억이 있다. 벌써 삼십 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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