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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24. 2020

달방 있어요

2020.10.24.토

일주일 간의 외출을 끝내고 내 집, 내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 아침 일찍 잠이 깨어서 시집을 읽다보니 '내일은 뒤꼍  감나무의 가을 수런거림을 들으러 갈 것이다' 라는 구절이 있어 밑줄 좌악 그었다.

나도 오늘 일찌감치 집으로 가서 가을 수런거림을 들으러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에 오니 내 시조가 실린 책이 와 있었다. 휴게소에서 사온 호두과자 두 개랑 커피 한 잔으로 점심 해결하고 침대에 누웠다. 세상 편하다. 왕후장상도 부럽지 않다.

비몽사몽 중에도 3시는 온다. 비몽사몽 중이라고 글을 쓴다. 오늘 3시의 제목은 달방 있어요, 이다.

저녁이 이울고 있는 시간에 자동차를 타고 다 낡은 시가지를 지나가는데 골목 어귀에 달방 있어요, 라는 현수막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지나치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흔한 러브도 외면하는 낡은 모텔

골목 한 귀퉁이 찢긴 현수막, 달방 있어요

한 달씩 끊어야 잇는

열두 칸

달의 방


허기진 생존이 남은 촉수 길게 뻗어

절며절며 당도한 아득한 저 변방

달빛도 등이 굽은 채

서성대는

익명의 섬

         <달방 있어요>, 김제숙


순수시를 지향하고 순수 속에 힘이 있다고 믿지만 시인은 또한 시대의 아픔을 외면할 수는 없다. 시인이라 시로 남길 수 밖에 없다.


오늘, 가을 수런거림을 듣는 건 물 건너갔다. 책 읽다가 졸다가, 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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