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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Nov 30. 2020

독수리 오형제의 안부가 궁금한 날

2020.11.30.월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속담을 몸소 실천 중이다. 살짝 금이 간 마음을 달래다가 그냥 몸도 주저앉아버렸다. 더 낮아질수 없을 만큼 방바닥에 찰싹 붙어버렸다. 이것도 나름 괜찮다. 며칠은 이 버전으로 지내야겠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은 복잡다난하기 마련인지라 해야할 일은 해야 한다. 내가 한 번 들여다봐주기를 기다리는 할머니가 있어서 전복죽을 들고 갔다. 나도 마음에 금이 간 환자라 전복죽은 다른 분께 부탁을 드려 끓여 오라고 했다. 덕분에 나도 늦은 점심으로 한그릇 먹었다.



다음에 기다렸다가 정수기 정기검을 받았다. 아이가 있대서 과자 하나를 들려보냈다.


그 다음에 동인지 창간호 마지막 교정을 보러 출판사에 갔다. 날씨가 추워져 내복을 꺼내입고 누빈 치마 저고리에 목도리를 두르고 - 눈밭에 굴러도 절대 안 얼어죽을 것 같은 - 마스크에 선그라스까지 중무장하고 갔다.

백쪽 남짓한 시집인데 고쳐도 고쳐도 고쳐야 할 부분이 나온다. 내 성질머리 같다.

교정지에 코를 박고 있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세 시 오 분전이다. 내 생체시계는 제대로 작동 중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걸 깜빡했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하니 용서하고 넘어간다.


자동차를 운전해서 오는 길에 본 하늘이 잔뜩 흐려있다. 바람도 분다.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전에는 이맘 때쯤 첫 그리스마스 캐럴을 들었는데 근래 몇 해 동안 캐럴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생략되는 것이 어디 그것 뿐이랴!


인터넷에서 퍼옴

사람 사는 냄새가 사라져 가는 시대다. 냄새가 오감 중에 제일 민감 하다는데...

바코드로 사람임을 증명해야 하는 시절을 산다.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하기는 식은 죽 먹기다. 바코드 찍는 기계에 바이러스 한 올 풀면 될 일이다.

지구를 지키던 독수리 오형제, 아니 오남매가 그립다. 그들도 이제 꽃중년이 됐을까? 안부가 궁금하다

***이런 횡설수설은 마음에 금이 가면 생기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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