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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Dec 07. 2020

한 그릇 밥의 힘 2

2020.12.7.월

오늘은 24절기 중 대설이다. 문자 그대로 큰눈이 내리는 절기인데 요즘은 겨울이 다 지나가도록 큰눈 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날씨는 곧 눈이 쏟아질 듯 잔뜩 흐려있다.


게으름을 부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친정에서 김장을 했는데 내 것도 한 통 가져왔다고 했다. 전화 한 이는 내 딸보다  서너 살 많다. 그럼에도 그 친정엄마를 나도 어머니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증을 깠더니(순화할 말을 찾지 못해서) 세상에나 오빠보다 겨우 한 살 많았다. 그래도 시침 뚝 떼고 요즘도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 딸인 오늘 전화한 이가 한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나는 이런저런 말을 하는  대신 비싼 밥 집에 가서 함께 밥을 먹었다. 그리고 가끔 만나면 차를 마시곤 했는데 나의 바램대로 어려움에서 잘 헤쳐나왔다. 마침 부동산 가격이 요동치기 전 아파트도 마련했다.


지금도 그 때 얘기를 한다.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을 때 내가 사준 밥 한그릇이 힘이 되었다고.

그때 이후로 친정엄마가 김장을 할 때마다 내 것도 잊지 않고 챙겨주신다.


지난 주에 친구들과 걷기를 할 때 한 친구가 동서네 김장까지 했는데 바로 가져가지 않고 우선 먹을 게 있으니 나중에 가져가겠다는 소리가 밉더라고 했다. 김장은 사실 보관이 큰일이지 않나.


말이 생각 나서 냉큼 달려갔다. 휴지 한 묶음, 점심 먹으러 어디 나가기가 무서워 집에서 먹을 요량으로 김밥 두 줄을 샀다.

갔더니 집된장에 집간장 한 병까지 보내셨다.

감격이다. 친정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큰댁에서 가끔 장을 가져다 먹는데 그것도 요즘엔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잠시 찻집에 들렀다. 커피를 내가 샀더니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는 언제 계산을 했는지 헤어지면서 빨간 우산과 세라믹 커피 드립퍼를 내민다.


마음을 담은 밥 한 그릇의 위력이라니!

오늘도 넉넉한 부자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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