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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Dec 23. 2020

중고 예찬

2020.12.23.수

그저께 주문한 시조집이 왔다. 책값 2000원, 배송료 2500원이다. 앱으로 접속하면 한 달에 한 번 1000원을 준다. 해서 3500원에 구입한 중고 시집이다. 기다릴 줄만 알면 이렇게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중고 신청을 해놓고 잊어버리고 있다보면 알람이 뜬다.



그전에는 중고는 거들떠도 안봤다. 칼날같이 빳빳한 책장을 넘기는 맛이 좋았고 - 그러다가 손을 베이기도 한다 - 갓 나온 책의 냄새가 좋았다.


세월이 가도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어쩌면 더 날이 서고 까다로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예전 문해교육 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금 내 나이쯤 된 분께 나이들면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살고 싶다고 했더니 그분 말씀이,

"김선생님, 지금 열심히 만나고 사랑하고 그러세요. 나중의 일은 기약하기 어려워요. 몸이 늙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늙어요. 사랑도 늙지요."

요즘 그분의 말을 실감하고 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이해와 용서의 폭이 넓어지는 것도 아니고 더 합리적이 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사람을 떠나서 사물에 대해선 조금씩 변하는 듯하다. 새것만 고집하던 나도 요즘은 중고책을 곧잘 산다. 중고라 해도 거의 새책 수준에 가깝지만 한풀 숨이 죽어 한결 부드러워진 책들이 꼭 나를 보는 듯 하여 반갑기도 하다.

아직 미발표작이라 넣어두고 있지만 이런 내 마음을 세 수짜리 시조로 쓴 적이 있다.


긴긴 겨울밤, 시조 읽는 아낙이 요즘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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