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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Jan 11. 2021

아침 굶은 시어머니 상 같은 날, 시어머니가 한 생각들

2021.1.11.월

오늘은 날씨가 잔뜩 흐리다. 이런 날을 가리켜  '아침 굶은 시어머니 상 같다'는 속담이 있다. 왜 하필 시어머니일까? 그럼 시아버지는 아침을 굶고도 편안하고 온화한 표정일까? 의문제기를 귀찮아하는 성격이지만 한 번 의문을 가져본다.

아마 시아버지는 아침 굶을 일이 별로 없었겠지. 아무리 못사는 가정이라도 시아버지는 어른이고 남자이니까. 그렇게 따진다면 굶을 확률은 시어머니보다는 며느리쪽이 훨씬 높을텐데 '아침 굶은 며느리상'은 왜 없을까? 아마 며느리는 아침을 굶어도 표시를 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초보 시어머니가 씨잘데기 없는 생각을 해 본다.

왜 어머니는 사랑과 희생의 상징이고, 시어머니는 심술과 무개념의 상징인지도 의문사항이다.



오늘의 얘긴 이게 아니다.

한의원에 가다보니 날씨가 잔뜩 흐려있어서 든 생각이다. 한의원 앞길의 가로수는 플라타너스이다. 여름에 무성한 그늘을 드리워줘서 고마운 나무인데 가을이면 그 잎들이 다 떨어져서 도로를 어지럽히기 때문에 청소부 아저씨들을 고생시키는 나무이기도 하다.

지난 여름에 갔을 때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오늘 빈몸으로 서 있는 나무를 보니 온통 옹이 투성이다.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놀랐다. 가로수여서 환경이 좋지 못하여 그런가.

옹이는 시의 소재로도 자주 쓰인다. 어려운 삶, 질곡을 건너온 세월들을 표현하면서 옹이가 박혔느니 읊곤한다.

그런데 이 나무들은 뭔가.


임고초등학교 교정

우리 아버지의 고향 영천에 가면 임고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의 교정에는 수백 년된 플라타너스 나무가 대여섯 그루가 있다. 옹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생기고 쭈욱 뻗은 나무다.

그 나무랑 수종이 다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오는 내가 본 가로수 플라타너스는 충격이었다. 그늘만 즐길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오전에 여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굴 본지 십 년은 넘었을 듯 하다. 내 브런치 글을 보고 있단다. 그러면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단다.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고 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내가 플라타너스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글을 쓰는 것, 책을 읽는 것, 여행을 하는 것, 사진을 찍는 것도 내가 치열하게 피흘리며 전쟁을 치뤄서 얻어낸 전리품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별일 없이 지내는 요즘도 나는 늘 전쟁을 준비한다. 가진 무기가 몸 뿐이어서 무기를 단련시키려고 오늘 한의원에 가서 보약을 지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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