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가는 길이다. 오래 전 원주에서 일년을 살았다.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딸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사돈 총각이 쓰던 빌라가 비여있대서 하루 가서 놀까 싶어 점심 무렵 길을 나섰다. 남편이 첫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대학원을 마치고 두번째 일을 시작한 곳이었다.
중국 음식으로 아침겸 점심을 먹고 며느리는 쉬고 아들과 나는 손주를 데리고 드라이브에 나섰다.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모른채 서울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처음 옮겨앉은 곳, 젊은 시절의 내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아들이 우리를 내려주고 세차를 하는 동안 잠시 산책을 했다. 손주가 예쁘게 장식된 창 가에서 멈춰서길래 들어가서 커피 한잔을 샀다. LP판, 턴테이블이 향수를 불러온다.
학창시절, 용돈을 아껴서 LP판을 사곤했다. 그 무렵엔 대구 동성로에 레코드 가게가 여럿 있었다. 동네마다 전파사라는 곳도 있어서 팝송이 거리마다 넘쳐흘렀다.
이우걸 시인의 시조 <모자>를 읽고 모자에 대한 시조는 쓰지 못하고 기어이 손주 모자, 내 모자를 샀다.
요즈음은 나이 탓인가, 자주 뒤를 돌아본다. 돌아본 길 저 너머에 있는 나와 만난다. 낯선 곳에 와서 새로 뿌리 내려야 하는 현실에 심한 낯가림을 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를 쓰다보니 이렇게 용감무쌍한 아줌마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