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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Jul 04. 2020

나이는 못 속인다

2020.7.4.토

   

점심을 먹고 대형마트에 갔다. 혼자서. 장 보는 것은 온전히 나의 소관이다.

요즘 우리집은 엥겔지수가 높다. 거의 쇼핑은 먹거리이다.

우선 쌀, 시절이 하수상하니 쌀 독에 쌀이 절반 쯤 있을 때 산다. 무거워서 10킬로 짜리로.

매주 두 번 정도 우유, 토마토 주스, 쌀국수 한 박스, 버섯 종류대로, 쇠고기 조금. 먹거리는 우선 무게가 나간다. 팔이 고장 난 이후로 장보기는 고역이다.


오늘은 먹거리 장보기는 아니다. 남편의 운동화 구매가 목적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선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언젠가 그냥 생각 없이 내렸다가 주차해 둔 곳을 찾지 못해 애를 먹은 후 생긴 버릇이다. 외워두면 좋을 텐데 그것 보다 사진이 더 편하다. 이러다가 간단한 사칙연산도 못하게 될까 걱정이 되기는 한다. 책을 읽어도 한 구절 외기가 어렵다. 그러나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살면 된다.    

운동화 코너에 가기 전에 유아용품점을 먼저 기웃거린다. 그 때 3시 알람이 울렸다. 요즘은 공공장소에서 사진 찍기가 눈치가 보인다. 그래도 이곳은 몰카와는 별상관 없으므로 서너 장  사진을 찍었다.  우선 아기 옷 몇 개를 골랐다. 값이 저렴하다. 지난 번 백화점에서 아기 여름 원피스를 십오 만원도 더 주고 사고는 혀를 끌끌찼다.

    

대형매장의 아기 옷들



백화점 아기 옷


어제 밤, 3시 알람 소리를 바꿨다. 그래서 예의 그 친절한 아저씨는 출동하지 않고 멜로디만 울렸다. 삽십 분 쯤은 들여다 봐야할 줄 알았는데 삼 분도 안걸렸다. (장하다!)   


다음으로 남편의 운동화. 사진을 찍어 어떠냐고 보냈는데 답이 없다. 한참만에야  ‘난 아무거나 괜찮아’ 라고 답장이 날아왔다. 참 쉬운 것 같지만 절대 쉬운 게 아니다. 저래놓고 내 맘대로 사가서 본인 맘에 안 들면 절대 안 신는다. 옷도 마찬가지.

결국 내 마음에 드는 것을 포기하고 남편 마음에 들 듯한, 제일 무난하고 새신이지만 헌신 같은 것 두 켤레 구입.    

처음 <아무튼, 3시>에 글과 사진을 올리면서 3시에 사진을 찍되 글은 그날 중으로 써서 한 달에 다섯 번 정도 올리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직 며칠이 되지는 않았지만 매일 올리게 되었다. 소싯적에 빼먹지 않고 일기를 써서 상을 받은 실력도 있으니 그냥 가볼까 한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는지. 이런 매일의 메모도 훗날 밖을 운신할 기력이 없을 때쯤 꺼내보면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젊은 시절엔 쇼핑을 즐겨했다. 즐겨했을 뿐만 아니라 까다로웠다. 잡지에서 본 마음에 드는 티스푼 하나를 사려고 온 백화점을, 시장을 다 들쑤시고 다니기도 했다. 이젠 쇼핑이 즐겁지가 않고 귀찮기만 하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 나이 이기는 장사는 없다더니 정말 그렇다.

집에 와서 쇼핑백을 내려놓으며 괜히 소리를 질렀다.


“이젠 운동화 정도는 알아서 좀 사 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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