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한

2020.7.10.금

by 김제숙


화, 수, 목요일을 회사에 나가는 며느리는 사회에서 다시 가정으로 복귀했다. 손주를 며느리에게 돌려주면서 4일간의 육아에서 놓여났다. 다음 월요일까지 며느리는 아기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터이다.

내 아이 둘을 어떻게 키워냈을까 싶다.


아들내외가 쓰는 안방에 누워 비몽사몽 중이다. 시어머니가 자기네 침대 차지하고 누워있는 게 별로일텐데 우리 며느리는 이불을 바꿔주며 자리를 봐준다. 밤에는 아기 방에서 내가 아기를 데리고 잘 참이어서 그동안 좀 쉬라는 배려일 것이다.


손녀도 보고 내일 나와 같이 내려가려고 남편이 새벽같이 왔다.

이제 출발했으려나 생각했더니 어느새 세 시간을 달려 문앞에 도착해 있었다. 9시30분에.


아들이 아버지가 오셨다고 점심 시간에 집에 왔다.

삼계탕을 끓여주었더니 아주 달게 먹는다.

겨우 중학교 때까지만 집에 있어서 저 혼자 살아온 기간이 더 길다.


거실에서 남편과 며느리와 손녀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서 그 소리들을 듣는 것이 좋다.

아주 오래전 여름 어느 날, 낮잠에서 깨어나 아버지와 엄마가 두런두런 나누시던 대화를 듣는 기분이다. 순간 이동을 해서 어린 시절로 와 있는 듯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는 것이 어려운 것도, 복잡한 것도 아닐진대 오늘 접한 비보는 마음이 아프다.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남편의 장점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내 남편은 돈도, 명예도, 그럴사한 지위도 없지만 안과 밖이 투명한 사람이다, 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오래 함께 살아온 지금은, 세상에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호기롭게 했던 내 말도 온전한 진실은 아니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힘든 민낯이 있다. 사람은 그만큼 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내일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내 일상을 살아야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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