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에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특권

우리 조금만 덜 치열하게 살면 안 될까요?

by Lisa


"띵동"

오후 4시 무렵 어린이집 벨을 눌러 아이의 이름을 말한다. 하원 준비를 마친 아이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린다. 자신을 데리러 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잠깐 멈칫, 이내 잔뜩 신난 몸짓으로 활짝 웃으며 달려와 안긴다. "엄마!!!!!!"


하원 시간에 맞춰 엄마가 데리러 오는 날은 1년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었다. 시터님이 사정이 생겨 못 오시는 날에만 반차를 내고 직접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고 깜짝 이벤트처럼 몰래 간다. 일찍 온 엄마를 보고 반가워서 펄쩍 뛰는 아이의 모습, 대낮처럼 밝은 오후에 조그마한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걷는 기분은 직장인 엄마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자 호사였다.



이 땅의 '엄마'가 된 사람들


나의 복직과 동시에 우리 부부는 아이의 하원과 저녁 돌봄을 맡아주실 시터님을 구했다. 한 달에 100만 원가량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어린이집 연장반에 말도 못 하는 아기를 홀로 남겨두는 건 내키지 않아서 시터님을 모시기로 했다.


워킹맘의 '오복(五福)' 중 하나가 '이모님 복'이라고 한다. 감사하게도 처음 만난 시터님과 단 한 번의 갈등도 없이 3년여의 시간을 함께 했다. 우리 아이가 인복을 타고났구나, 하며 매일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아이를 맡아주신 시터님 역시 경력단절 여성이었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되신 후 그 길로 일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자녀를 키우며 가정을 돌보셨단다. 이제는 아이가 커서 더 이상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됐고, 갱년기 증상까지 더해져 몸과 마음이 축 처져있던 찰나에 아이 돌보는 일을 시작하게 되셨다고 한다.


시터님은 부모인 우리보다 더 세심하게 아이를 챙겨주셨다. 작은 상처가 생기면 꼼꼼하게 약을 발라주셨고, 감기 기운이 있으면 병원에 직접 데려가 주셨다. 아이의 생일, 크리스마스에는 아이가 너무 예쁘다는 이유로 정성스럽게 고른 선물을 사주시곤 했다.


엄마가 되기 위해 일을 포기했던 중년 여성, 일을 하기 위해 엄마의 빈자리를 다른 엄마로 채우는 젊은 여성. 이 땅의 '엄마'라는 자리의 무게는 참으로 애틋하고도 무겁다.



너의 순간을 함께하는 베이비시터가 부럽다


말도 못 하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다. 어느덧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돌쟁이 아기일 때도 이보다 더 예쁠 순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 트이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신세계가 펼쳐졌다. 아이는 황홀할 만큼 사랑스럽고 예쁘고 귀엽고, 이렇게 예쁜 아이가 태어났을까 감탄스럽기만 했다. 심장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사랑이 이런 것일까 싶다.


시터님은 아이의 놀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사진과 영상으로 내게 보내주셨다. 하원 길에 이런 놀이를 했구나, 내가 볼 수 없는 시간에 너는 이런 표정을 짓고 있구나. 휴대폰 화면 속에 담긴 아이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문득 "언제 이렇게 자랐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못 올 아이의 예쁜 순간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공허해지는 기분이었다.


때로는 아이의 하루를 매일 함께하고 있는 시터님이 부러운 날도 있었다. 특히 어린이집에서 환하게 웃으며 달려 나오는 모습을 매일 만난다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 어눌한 발음으로 애교를 부리는 모습, 별것 아닌 일로도 신나게 깔깔깔 웃음 짓는 모습까지.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주변의 선배 엄마들은 끝까지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어차피 아이는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엄마를 찾지 않을 것이고, 이후에는 엄마의 관심이 아니라 엄마의 돈이 필요해진다고. 아이 다 키워 놓고 다시 일을 하고 싶어질 때쯤엔 나를 찾는 회사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냉정한 현실까지도. 너무 당연하고 맞는 말이라서 내 마음만 굳건하게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난 지친 마음에 항복하고 퇴사를 선택했다. 내가 멈춰 선 이유를 아이에게서 찾고 싶진 않다. 그저 내 남은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잠시 걸음을 멈춘 엄마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그냥 쉬는' 시간을 가졌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비로소 깨닫게 된 중요한 사실 하나. 나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며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가족과의 시간이 소거됐을 때, 온몸과 마음이 빠르게 고갈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퇴사를 한 이후에는 매일 4시에 아이를 만난다. 하원 후에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거나, 도서관에 가거나, 둘이서 손잡고 가까운 박물관에 다녀오기도 한다. 회사 다닐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그저 부럽기만 했던 일종의 특권과도 같았던 일을 실현 중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왜 이렇게 하원 시간이 빨리 오지?' 싶은 날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눈 깜짝할 새 자랄 것이고, 엄마를 마냥 졸졸 따라다니는 '껌딱지' 시기 역시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이 순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또 하나의 모습이 있다. 오후 4시에 아이를 데리러 올 수 있는 엄마가 생각보다 많았다. 편한 옷차림새로 미루어보아 재택근무 중이거나, 시간이 자유로운 사장님이거나, 나처럼 회사를 다니지 않는 엄마일 것이다. 아무래도 대부분은 후자일 것 같다.


통계청의 '2024년 상반기 지역별고용조사'에 따르면 15~54세 기혼여성 중 6세 이하 자녀를 둔 여성의 취업률은 55.6%에 그쳤다. 영유아 자녀를 둔 엄마의 반은 일하고, 반은 전업주부라는 의미다. 경력단절의 사유로는 육아가 41.1%로 압도적이다. 여전히 여성 임금이 남성의 71%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여성들이 고숙련, 정규직 일자리보다는 비교적 진입이 쉬운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에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단순한 취업률의 수치가 아니라 일자리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후 4시에 아이를 만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기를


대학 시절 보았던 한 북유럽 국가의 다큐멘터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아이의 하원 시간이 되면 아이의 부모뿐 아니라 삼촌, 이모, 조부모 등 아이의 가족이라면 누구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이를 데리러 간다. 아이를 낳았으면 부모(보호자)가 마땅히 아이를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가족 중심적인 문화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 사회도 아이 키우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는 날이 올까? 출산 후에도 의심의 여지 없이 내가 일하던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믿음, 아이에게 부모가 필요한 순간에 기꺼이 달려갈 수 있는 사회적인 관용, 아이의 하원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가족 중심적인 가치의 공유.


우리 모두 조금만 덜 치열하게 살면 안 되겠느냐고, 온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 있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오늘도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닿지 않을 공허한 바람을 조용히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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