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구'잖아요.
얼마 전 핀란드 아동 복지 전문가 12인이 참여한 <행복한 아이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었다. UN 세계행복지수 8년 연속 1위, OECD 국가 중 국민의 학력이 가장 높은 나라, 인적 자원 보유국 세계 1위, 인적 자본 경쟁력 세계 2위, 어머니와 아이의 웰빙 지수 세계 2위, 어린이에게 공정한 나라 2위, OECD 국가 중 청소년 삶의 만족도 3위, 가장 평등한 나라 세계 4위, 남녀평등 지수 EU 3위,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 세계 3위, 가장 안정된 국가 세계 1위 등 '행복한 나라 핀란드'를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는 차고 넘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OECD 38개국 중 세계행복지수 35위, 전 세계 저출산 압도적 1위, 20년째 OECD 자살률 1위, 청소년 자살률 3위, 노인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 남녀 임금격차 1위, 유리천장 지수 1위, 아동 삶의 만족도 최하위권을 석권하고 있을 만큼 아동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가 '덜 행복한 상태'에 놓여 있다. 최근 세이브더칠드런이 만 10∼18세 아동·청소년 1000명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아동 10명 중 4명(39.6%)이 가장 태어나고 싶은 나라로 ‘삶의 만족도가 높은 나라’를 선택했다. 눈물나는 결과다.
참 궁금했다. 도대체 핀란드는 어떤 나라이길래 이렇게 행복한 걸까? 비결이 뭘까? 뭔가 특별한 교육법이나 비책이 있는 건 아닐까? 호기심에 빠르게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이 책이 내게 말해준 결론은 너무 평범했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의 비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전문가 대부분이 '아이와 많은 시간 보낼 것'을 무척이나 강조했다. 아이와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세심하게 관찰하고 파악해야 내 아이에게 맞는 적절한 양육법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강조도 빼놓지 않았다. 유난 떨지 않고 과하지 않게 아이를 키워도 된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전하고 있다.
솔직히 이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너무 당연한 내용이라서 오히려 "이게 다라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실제로 우리는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아이에게 자유롭게 놀이하고 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바빠도 너무 바쁘다. 이전 글에서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았던 것처럼 나 역시 늘 시간에 쫓기며 동동거리는 하루를 보냈다. 깜깜한 저녁에 집에 도착해 지친 몸으로 아이를 만나고, 하루 1시간 그 짧은 만남에도 온 힘을 다해 놀아주지 못했다. 늘 피곤하고 지쳐있는 엄마, 작은 일에도 쉽게 예민해지는 엄마.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밥 먹을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주말뿐이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을 종종, 자주 했다. 당연히 행복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결핍은 결핍을 낳는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맞벌이셨던 부모님은 늘 바쁘셨다. 항상 바쁘고 피곤해 보이셔서 최대한 손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뭐든 스스로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성인이 됐고 나는 한때 그것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도움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실수나 오점을 남기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완벽주의자형 성격이 형성됐다.
스스로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작은 실수도 용납하기 어려운 완벽주의,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인정욕구.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3종 세트가 육아와 맞벌이라는 한계 상황을 마주하면서 결국 내게 극한의 스트레스로 터져 나왔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나는 그냥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바쁜 부모님이 내 친구관계와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봐 주길 바랐고,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궁금해해주길 바랐다. 수학 점수를 100점을 맞아도, 10점을 맞아도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라리 혼내주길 바란 적도 있다. 관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 마음이 성인이 된 나에게 인정욕구와 완벽주의로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부모님과 함께한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전부 초등 이전 유아기 기억뿐이다. 엄마와 함께 만들어 먹던 빵, 엄마가 해주신 피자, 아빠가 만들어주신 나의 첫 책상,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함께 읽었던 동화책. 그 포근했던 품과 목소리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부모님이 맞벌이를 시작하셨던 이후에 생각나는 추억은 사실 거의 없다. 유아기에 형성했던 단단한 애착으로나마 지금까지도 부모님은 내게 따뜻한 사람, 나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 아이에게 자신의 유년기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듬뿍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즐거운 추억을 가득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어쩌면 어린 시절 느꼈던 나의 결핍을 우리 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나 스스로에게 채워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주부가 된 내가 요즘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이다. 퇴근하는 남편의 도착 예정 시간에 맞춰서 저녁밥을 차리고 그동안 아이는 보고 싶은 만화 한 편을 본다. 남편이 도착하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서 밥을 먹는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무슨 수업을 했고, 친구와 무슨 일이 있었고, 회사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차려진 음식을 먹는다.
날씨가 좋으면 편안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산책길을 걷는다. 아빠와 아들이 함께 물수제비를 뜨며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바닥에 기어다니는 개미와 공벌레를 관찰하며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는 그냥 휴식을 즐긴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이 일찍 퇴근하고 걱정 없는 저녁을 즐길 수 있다면, 번아웃도, 우울증도, 저출산도 전부 다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아, 그렇구나. 이제 보니 맞네, 맞다. 핀란드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그것만 지킬 수 있다면 우리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