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 사는 까만별 May 21. 2023

엄마의 강 자국을 가로쥐고서




신새벽, 아기는 첫 외출을 나섰습니다.

'너는 너무 어려. 이 밤중에 어딜 가는 거니?' 누군가 물어도 아기는 가야 할 곳이 있다며 그 새벽에 동그란 집의 문을 닫았습니다.

문을 닫고서 아기는 자신의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립니다.


아기의 집은 거대한 물방울. 방울로 시작했던 아기는 물속에서 물처럼 불어났습니다. 집에서는 음악이 나오고, 그 안에서 아이는 물장구를 치며 놀았습니다.

조용히 놀던 어느 날, 아기는 음악이 아닌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아가야,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그날, 아기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날부터 집은 기분 좋게 흔들렸고, 따뜻했습니다. 집에 달린 대롱을 통해 자주 따뜻한 것들이 전해왔습니다. 대롱에 무언가 오면 아기의 배고픔이 가셨습니다. 대롱을 채워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기는 궁금해하며 물방울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합니다. '엄마'라며 내 이름을 부르는 저 목소리가 대롱을 채워주는 게 아닐까. 그날부터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면 발을 굴렀습니다.


아기의 거대한 집은 흔들의자 위에서 엄마가 자신의 배를 만지며 책을 읽습니다. 배는 점점 커져가 마치 오리처럼 뒤뚱거립니다. 가파른 숨을 내쉬어도, 엄마는 집을 쓰다듬으며 커져가는 집을 흐뭇하게 쳐다봅니다.


'너는 너무 어려. 이 밤중에 어딜 가는 거니?' 결의에 찬 그날 밤 아기를 붙잡은 건, 다름 아닌 집이었습니다. '아가야 너는 너무 어리단다. 계속 내가 지켜주고 싶어. 대롱에 음식을 주고, 물장구를 치며 놀자.' 그러나 아기는 생각합니다.

'물장구도 즐겁고, 이 집도 따뜻하고 좋아. 그러나 난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해.' 아기는 주먹을 쥐고 새벽에 동그란 집의 문을 닫았습니다. 길이 너무 좁아도,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를 찾아서 점점 밖으로 나갑니다. 익숙한 어둠에서 날카로운 밝음으로, 따뜻한 집을 떠올리기 위해 용기있게 눈을 감으며...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산모 조금만  힘을 내세요!"

축축하게 불어있는 아기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아기가 찾던 바로 그 목소리... 눈을 뜨자 아기처럼 축축한 엄마가 아기를 보며 울고 있습니다. 이 새벽에 어린아이는 드디어 엄마와 처음 만났습니다.


'내 뱃속에서 하나의 점으로 시작한 내 아가야. 너는 언제나 너무 어리단다. 계속 내가 지켜주고 싶어. 우리 집에서 내 손을 잡고 계속 있으면 안 될까?'

아이가 몇 살이 되어도 엄마에겐 너무 어려 보입니다. 그러다 엄마는 곧 마음을 고쳐 잡습니다.


훗날 아이가 자라 내 품을 떠나더라도, 내 강물이 만든 흔적을 도르르 손에 쥐고서 어떤 물결에도 유영할 것이라고... 내 강물의 흔적이 손에 있다면, 세상 어느 곳에서든 나의 강 속에 있는 거야.


어느새 엄마보다 더 큰 아이의 손을 양손에 잡고서, 엄마는 조용히 항해자를 위한 기도를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