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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Oct 03. 2023

병원에는 성냥팔이 소녀가 산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며칠 전, 꿈이었습니다. 저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시골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겨울이 되어도 군불을 땐 아랫목은 따뜻하였고, 어린아이는 짧아진 겨울 햇살에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를 향해, 농한기를 맞은 그녀가 촉촉한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댑니다. 머릿결을 만지며 넘겨주던 따스한 손이 좋아, 아이는 그녀의 무릎으로 옮겨 더 깊게 잠든 척 눈을 감았습니다. 막내 아이의 어리광에도 겨울의 엄마는 오래오래 아이와 오후를 보냅니다.

 땅거미가 지는 하늘.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자 엄마는 저녁밥을 하러 방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엄마 나가지 마. 막내는 머릿결을 쓰다듬던 엄마의 손을 잡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손이 닿자마자,

나는 새벽에 일어난 중년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잠이 들면 엄마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중년은 강해지는 아침을 뒤로한 채 다시 눈을 꼬옥 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서늘한 가을 아침. 꿈에서도 엄마는 일하느라 새벽같이 집을 비워두었습니다. 막내는 해가 질 때까지 엄마를 기다립니다. 성냥을 켜서 엄마를 불러내는 심정으로, 종이를 깔고 검은 마찰을 내며 고요히 엄마를 불러보아침입니다.



엄마에게.

4음절로 편지를 시작해 본 기억이 흐릿한데도, 회한보다 아름다움만이 가득 담기는 건 왜일까요. 저의 슬픔은 으레 망각에서 왔습니다. 삶에서 망각이 축복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랑하던 사람의 사진을 보고도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 몇 번의 경험은 축복과는 거리가 있었지요.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엄마의 언행들은 의식에서 사라지지가 않네요. 여백이 많은 화법을 지녀 미운 말을 비우던 엄마의 정제된 언어는, 여백만큼 인정으로 각인되어 쉬이 사라지지 못한 채 저에게 스며들었나 봅니다.


여백이 많던 엄마.  부정적인 것들은 모두 생략해 버리던 엄마는 분기점이 된 그날의 새벽마저 침묵합니다. 정월을 며칠 앞둔 어느 새벽, 전날 밤 저와 웃으며 통화하다 잘 자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남기고선 정작 당신은 그날 밤 오래도록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셨어요.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매일 끼니를 챙겨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자식과 통화를 하고도, 날이 밝아오며 사라지는 꿈들은 엄마의 노력보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녹아갔어요.


 이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때마다 매번 낯설어하는 할머님, 겨울잠을 겪고 봄에 깨어나신 할머니는 낯선 사람을 마주하고서도 언제나 활짝 웃으시네요. 그 웃음이 너무도 예전 같아 저는 가끔 할머님 앞에 이지러지는 봄의 아지랑이를 보곤 합니다. 예전 같은 그 웃음 한 줄기를 잡고서, 나는 매주 당신을 찾아갑니다.


 엄마를 만나러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것도 엄청 미안해하던 엄마가, 흑백사진들을 들고 할머님에게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떤 말을 하실까요...  엄마를 만나러 고향에 내려가는 자식에게 지나칠 만큼 오지 말아라 하던 당신...

그때는 하지 못했던 말을 오늘의 할머님께는 꼭 해드리고 싶어요.

오늘도 면회를 예약한 이유는, 어린 시절을 기억한 채 내가 잡을 수 없던 꿈속의 엄마만큼, 휠체어를 탄 채 손을 어루만질 수 있는 지금의 할머님제겐 너무나도 소중하니까요.  찾아온 우리를 보고 어쩌면 낯설어도 웃으며, 쓰다듬는  좋아하는 상냥한 당신은 예전 그대로 너무 고우니까요.  집안일을 돌보는 농한기에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엄마를, 이젠 중년이 된 제가 계절에 상관없이 쓰다듬어 드리렵니다.


 성냥처럼 기억에 번쩍 불이 붙다 연명해 가는 병원 속 엄마. 여백에 말라가는 산소를 채우기 위해 오늘도 나는 꿈에서도 당신을 찾습니다. 내일의 태양에는 우리의 이름이 남아있기를.




P.S

엄마의 보드라운 성품으로 이루어진 보물상자는 제 마음 한켠에 고고하게 자리를 틀고서 독립한 이후에도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엄마의 말을 완성하는 여백을 저는 감히 따라갈 수가 없네요. 제가 그 수준에 다다르는 날까지 오래오래 동행해 주세요. 


엄마, 언제까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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