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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Jun 03. 2024

글벗에게

모든 구독자님께




 매주 정해진 주제도 없는 파편의 저를 기다려주는 관용적인 당신. 오늘은 그런 당신에게 서찰띄우고자 합니다.     


 인터넷에서 관측을 기다리는 작은 등대가 된 지금, 시절을 돌리면 제게는 행선지가 분명한 편지들이 있었습니다. 안부라는 이름의 폭넓은 소재들은 지금과 동일하더라도, 저는 수신인의 얼굴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지우개로조차 지워지는 연필로 영원을  새기고선, 그렇게 별천지 같은 종이를 납작하게 봉하면 새벽이 다 되었지요. 아침이 되면 길가에서 말을 건네는 꽃들을 지나 빨간 우체통으로 향하는 일련의 행선지를 저는 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연둣빛으로 수줍게 봄을 고백하던 신록들이 햇살을 퍼올리며 출렁이고, 봄의 전령이 된 소담한 꽃들이 산들산들 가리키는 오월. 시절의 봄은 지났지만, 계절의 봄은 작년처럼 돌아왔습니다. 찰나로 피어 영원으로 낙하하는 향기를 듣기 위해 귀만을 열어둔 채 우체통의 흔적을 향해 걷습니다.


 번잡하고 공허한 소리는 침체되고, 바람이 전하는 침묵의 언어만이 정제되어 온 세상에 마음을 전합니다. 바람은 언제나 짧게 불지만, 언제나 다시 붑니다. 지워지는 영원은 언제나 덧없지만, 특정되지 않은 그대들은 언제나 바람처럼 다시 오곤 합니다. 그렇기에 바람이 불면, 저는 흐붓이 합니다.    

 

 어떠한 주기성을 지니고 찾아올 것이라는 추정 하나로, 작가 하나로는 어두운 이곳에 그대는 촛대를 들고 담담히 걸어옵니다. 그리고선 자신과 글을 투사하기 시작합니다. 활자는 독자의 덧칠로 매일 조금씩 물들어갑니다.

 언제나 저의 작은 생각들로 글을 쓰곤 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참을성 많은 당신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어떤 글이 읽기에 좋았는지부터, 어떤 글에서 특별히 당신마주 본 적이 있는지까지. 사실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플랫폼에서 알려주는 지표가 있다고는 하나, 그 숫자들이 여러분을 대표하지는 못하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당신의 참을성 하나만을 믿고 앞으로도 저의 작은 생각들을 통해 당신을 비추어보려 합니다.   

  

 언젠가 제가 고백했었지요. 웹이라는 우주에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발광하지 않아 눈에 띄진 않으나 저는 분명히 존재하며, 저처럼 밤하늘에 눈에 띄지 않는 검은 별도 마음에는 미약하게나마 온기를 품고 있음을 담아, 글로 조금씩 감정을 투사해 오고 있음을...

 한 만화가의 말에서 영감을 받은 작은 아이디는, 이제 저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까만 밤하늘에 보이지 않는 별에 불과하지만, 제글을 데우는 그대를 기쁘게 떠올리며 온기를 뿜고자 합니다.


 까만별은 항성일 수 없습니다. 당신의 작은 에너지를 반사하여 빛나게 되는 저라는 반사체는, 당신이 없다면 성립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꼭 남기고 싶었어요. 오래도록 온도도 빛도 적은 상태로 동네에 은신해 있던 저에게 온기를 보태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빛이 성립할 수 없는 까만별은, 또 다른 검은 별들에게 사견을 나누는 마음 새겨나가겠습니다.  

    

 온기들의 마찰로 글이 빛나게 도와준 당신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런 당신에게 펼쳐진 유한의 시간이 소중한 경험과 추억으로 무한한 삶이길, 그리고 긴 찰나로 오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흑연은 지워져도 종이에 압력은 남아있듯이, 그대온기는 자신은 물론, 누군가를 별처럼 빛나게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만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 거주  까만별 올림.





P.S  시절이 가도 계절이 돌아오듯, 저의 꿈은 중년이 되어서 시작되었습니다. 초록으로 가득한 봄날 끝자락, 세상의 재촉에도 당신의 온기를 마침내 태우길 응원하는 마음도 고이 접어 동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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