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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Jun 24. 2024

섭리로 흘러가는 바퀴 속에서 남깁니다 2

스승님께



스승님.

어릴 적 제가 살던 고향엔 커다란 연못이 있었습니다. 물의 향기를 가득 품은 연못 위에는 초록의 연꽃이 고요한 존재를 뿜었지요. 초록의 저변을 조명하던 수면은 지상의 하늘과 구름도 담아내고, 얕은 물에서 참방참방 물방울을 일구던 작은 발들도 다 받아들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비릿한 물바퀴를 수시로 새기던 그 시절의 수면의 파동과 파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아니 어쩌면 연못을 순환시키던 소란스러운 물장구들이야말로 인생마냥 찰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승님. 발에 물갈퀴가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어온 저는, 여름의 초입에서만큼은 다시금 고향의 연못을 생각합니다. 생의 한가운데 물기를 머금어 통통해진 여름 햇살.  그 틈으모든 게 부서져내리는 여름 초입에 흰 고무신을 신은 스승님을 마침내 만나 뵈었습니다.

 소생하는 계절로 인해 나무도 색색의 잎을 입었건만, 스승님은 언제나 하얀 고무신에 회색 법복입니다. 세상의 근심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찾아가시치고는 너무도 소박한 복장에 자연스레 스승님의 발을 향해 고개를 숙입니다. 언제나 세상에서 유리된 복장의 스승님이 제시해 주시는 세상 이야기에 서서히 경청을 시작합니다.      


 연기 공 무아 무상 아상 등...조금은 낯선 교리 안에서 지혜의 법문으로 오늘도 단상에서 가르쳐주시는 스승님. 삶의 고통을 다양하게 해석해 주시는 스승님 덕분에 울음을 내려두고 웃음을 짓는 사람들 모습을 며, 저의 활자를 스승님께 맞춥니다.

 언제부턴가 스승님 음성을 들으며 섭리의 바퀴를 반추하는 제 삶이 조금씩 가벼워집니다. 세상사 가볍고 무거운 것도 없고,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고, 크고 작은 것도 없는 그저 하나의 공(空)이라 하셨지요. 공이기에 언제든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반짝였기에 오늘도 수레 아래서 힘을 냅니다.


 일치감치 속세를 떠나셨지만 지금은 어린 중생들의 고민을 위해, 속세의 평화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시는 고된 모습과 갈라지는 음성에 속세의 어린 눈은 어리석게도 아쉬움과 슬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처럼 생과 사도 별일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오늘도 덕지덕지 붙은 욕심과 미련을 하나씩 떨굽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인생이겠으나, 결국 길가에 피어난 들꽃 정도의 삶의 무게로 제법 가벼워졌으니까요.     


 길가의 풀 한 포기로 태어나 지금껏 사랑과 사람들 사이에서 섭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살았으니,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축복이자 부처님의 가피가 아닐는지요. 천사의 고리는 동양의 하늘과 같은 원형입니다. 하얀 고무신을 신고 여러 종교의 신자들을 포용하는 고요함이, 생명의 한 살이를 포용하던 유년의 둥그런 연못을 닮았습니다.     


 평생 무채색 옷을 고, 하얀 고무신을 신고서 자연처럼 살아가시는 스승님!

 단출하지만 가장 찬란한 빛을 만드시는 스승님이 계시기에 흐붓이 기뻤습니다. 수수하고 검소한 의식주를 닮은 단상 아래 푸른 연못이 고요히 짙어갑니다. 여름이 오고 가더라도, 제 마음의 연못에 연꽃을 피워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습니다.     


 세속에서 독립적인 분이시감히 어떤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어렵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 욕심과 상관없이, 스님께서 세상에 존재함이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의 열기에도 한결같은 지혜로 늘 마음이 평온하시기를 소원합니다.       

   



* 추신;  교에서 벗어나 존경하는 법륜스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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