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더운 밭에서 식물만 보고 살았는데도, 향기를 풀어내는 초록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하루 종일 들에서 잡초를 뽑고 저녁을 차리러 가는 길에, 길거리에 꽃이 펴 있으면 몇 송이 가져왔었다. 비록 들에 핀 꽃은 내 마음에 살려주지 못하지만, 길에 핀 꽃과라도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었기에...
꽃병을 살 생각은 못하고 줄기를 닮아 초록색 사이다병에 꽂아 두면, 꽃은 내가 들과 부엌에서 일하는 동안 우리 안방을 지켜주었다.
이젠 우리 내외가 들에 나갈 필요가 없어졌기에, 더 이상 우리를 수호하는 작은 꽃병은 필요치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사이다병에 들꽃을 꽂을 기력이 없어졌다. 여태 내 사이다병에서 시들어왔던 꽃들처럼 지아비가 시들어가고 있기에...
몸이 시들어가는 지아비와 마음이 시들어가는 내가 있는 안방의 창문을 열면, 초록이 내는 향들이 들어온다. 오늘만큼은 시듦을 모를 것처럼 싱싱한 저 초록이 부럽다. 품은 향기를 소롯이 뿜어내는 꽃처럼 사람도 평생을 저리 조용히 어여쁘게 살다 가면 얼마나 좋을까나...
지아비의 기억의 꽃잎들이 후두두 떨어져 가는 것을 여느 때처럼 바라보는 주말 아침, 둘째 딸 내외가 싱그러운 향처럼 찾아들었다. 봄 같은 사위 손에 뭔가 잔뜩 들려있는데 평소와 달리 보여주질 않는다.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한참을 들어오지 않다가 장모님께 보여줄 게 있다며 내손을 이끌고 밖에 나가보잔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마당에다 소담한 꽃밭을 만들어놨다. 사위가 들어올 때 싱그러운 향이 난 건 그저 젊음 때문만은 아니었나 보다. 두 손에 들려있었던 꽃들이 마당에 이사를 마치고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잡초란 이유로 뽑혀야 했던 들꽃과, 사이다 병에서 시들어가던 수많은 젊음들과 달리, 저 꽃들은 계절 내내 제 수명을 다하고 피어있으리라.
계절을 거의 다 돌아 말라가는 우리 부부 곁에, 꽃 같은 마음이 찾아왔다. 사이다병의 꽃처럼 꽃이 우리 집을 지켜주길 바라지는 않는다. 겨울같이 지친 마음에 찾아온 싱그러움이 우리 화원에서 모든 계절을 겪을 수 있기를, 거의 모든 계절을 다 겪은 우리 지아비도 더 이상 살아온 계절들을 잊지 않기를 바라볼 뿐이다. 그루터기 같은 몸뚱이가 된 우리 두 명이, 오래도록 자식들과 작은 꽃밭을 지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