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지극히 공평해서, 꽃놀이를 나갈 수 없는 내 발아래에도 꽃을 놓아준다. 우리 집 마당은 달마다 다른 꽃을 떨구어 주는데, 이번 달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일락의 차례다.
시기를 기다려 눈송이 속에 품고 있다가, 연보랏빛을 맘껏 내쉬고 있다. 창문을 열면 향기와 빛깔의 흔들림이 들어와, 적막한 우리 집의 기운을 환기한다.
식사를 하고 현관 앞 의자에 앉아, 하늘의 구름에 떠밀리듯 가지에 걸린 보라색 뭉게구름을 구경한다. 뭉게구름은 하루가 갈수록 봄볕에 빛바래간다. 아니 사실 내가 너무 자주 시선을 주어 닳아가고 있다. 사람과 달리, 탁해져 가는 색깔도 아름다워서 넌 참말로 좋겠구나....
라일락 나무는 제 아래서 곧 자랄 상추를 바라보며 바람에 몸을 이리저리 흔든다. 흔들리다 떨어진 보라색 꽃잎이, 세상 밖으로 뽀록 뽀록 기어 나오려고 꿈틀꿈틀 거리는 상추의 기운을 받으며 흙 위에서 몸을 떤다.
자연은 시기에 따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그때도, 라일락은 떨어져 상추를 만났고, 훈훈한 바람에 나는 익어갔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자연은 떠나가기에, 그때는 지금과 달리 만개한 저 나무 뒤에 지아비가 서있었다. 세로 줄무늬 남방과 짙은 남색 두꺼운 바지에 언제나 흙을 묻히고서는.
소주 두어 잔에 반찬 한 젓가락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식사를 잡수던 모습과, 오토바이 타고 장을 봐서 대문으로 들어오던 모습과, 겨울이면 집 앞 노인정에서 놀다가 약주 얼큰하게 들이켜고 흥얼거리며 집으로 건너오던 모습. 라일락 핀 현관 앞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떠난 지아비가 라일락 아래에 자연처럼 존재한다. 그 자연은 떠나갈 것을 알았음에도, 지나치게 슬퍼서 아름답다.
라일락 꽃말이 젊은 날의 추억, 첫사랑이라고 막내가 말해주었다. 고단했지만 행복했던 내 인생, 그 젊은 날의 추억으로 언제나 함께 하는 내 첫사랑...
너무 자주 바라봐 자연스럽게 닳아버린 라일락이, 보랏빛 구름으로 다시 날아 지아비의 하늘로 조금씩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