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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Aug 29. 2024

아모르 파티 (Amor fati)

8학년 2반 국민일기




 엄마가 되고 나서 떠나보내는 것을 배워왔다. 내 품에서 학교로 떠나고, 고향에서 도시로 떠나고, 배우자를 만나 집을 떠났다. 그랬기에 나는 "다녀왔습니다."라는 대사가 티 내기 싫을 만큼 좋았다.



 그리고 오늘 밤, 모든 아이들이 몇 년 만에 돌아왔다. 각자의 도시에서, 각자의 병환에서, 우리 가족의 헤어짐에서, 우리는 겨울을 뚫고 마침내 다시 모였다.

신발들이 서로를 반기며 몸을 비틀며 인사하고, 여느 때와 같은 매서운 바람은 우리가족의 이야기를 뚫지 못하고 마당만 기어 다니고 있다. 보청기를 끼면 자식들이 여태 살아온 이야기가 들리고, 보청기를 빼면 자식들이 웃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이 웃고 있는 얼굴들이 좋아, 어두운 귀로도 밝은 밤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다음 날 아침, 겨울밤만큼 길어진 식탁이 정성스럽게 채워져 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의 노래가 상 위로 가득 울린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생일 축하합니다."



 한 해를 먹는 건 슬픈 일이 아니다. 한 해가 가기에 자식들이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손주들이 결혼도 한다.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께 자식들과 손주들은 각자의 도시로 나와 힘차게 살아간다. 나는 이것이 감사하다. 유년처럼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도, 위험하니 운전해서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반복할 만큼...


 그러나 한 해를 먹어가면 슬픈 일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친구 중에는 남은 사람보다 떠난 사람이 더 많고, 자식들이 늙어가며 병환을 겪기도 하고, 언제나 함께 살아가던 사람과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살아가는 건 좋은 와중에 만나는 슬픔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각자의 삶들을 잘 견디고서 아이들은 이렇게 돌아와 내 생일을 축하해 준다. 몇 년의 시간을 견디고 만난 우리라서 더 애틋하지만, 앞으로는 인고의 시간이 더는 없으면 좋겠다.



 "엄마 소원 다 빌었나? 이제 촛불 끄자!"


 나는 먼 거리에서 힘차게 숨을 내뱉었다. 한숨과는 다른, 다음 호흡을 이어나가기 위한 강한 숨을... 초가 꺼지고, 자식들이 박수를 쳐준다. 보청기 너머의 박수 소리보다도 내 눈에 보이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이 좋아, 나도 아이들을 따라 환하게 웃는다.


 내가 꺼뜨린 매캐한 연기가 집을 나서 선산으로 천천히 날아간다. 건초를 덮고 쉬고 있는 우리 주인할아버지가 연기에 묻은 자식들의 따스함을 맡고서, 찬찬히 일어나 우리 집을 오래 지켜준다.









# 『8학년 국민일기』시리즈는 친정엄마의 시선으로 막내인 제가 써보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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