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싫어하는 너에게
나한테 넌 너무 좋은 사람이야
내 영혼이 다시 여행을 떠난다.
다시 내 머릿속에 모든 게 들어온다.
이번엔 시간이 좀 더 지나서 대학생이다.
내 눈앞에는 어떤 여성이 앉아있다.
원목 스타일의 가구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에 왔다.
내가 어딜 가나 먹는 복숭아 아이스티는 언제나 같은 맛이다. 아이스티 가루 회사가 같기 때문이겠지.
난 내 앞의 여성을 인터뷰하고 있다. 정확히는 조사하고 있다. 심리 관련 에세이를 쓰기 위함이다. 간단한 심리검사와 몇 가지 질문을 한다. 심리 검사 결과로는 외향적이고 감성적이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다. 나머지는 답변이 진실되지 않았다고 판단되기에 정확하지 않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22살 안시연 씨 맞으신가요?"
"네 맞아요."
"먼저 메일로 답변해 주신 심리 검사 결과는 이렇습니다."
난 심리 검사 결과 종이를 건넨 뒤 한번 그녀를 살핀다.
검은색 청바지에 흰 티 그리고 그 위에 파란 셔츠.
제법 어른 티가 나는 사람이다. 어린 모습이 조금 빠져나오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어른이다.
"몇 가지를 질문할 건데 답변하시는 내용은 저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공유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먼저 후회하는 일 있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걸로요."
"뭐 수능 때 마킹 실수죠."
"그럼 초등학교 5학년 때 당신은 대체적으로 기분이 어땠는지 기억하시나요?"
"평범한 아이들처럼 재밌게 놀았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요?"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일 같습니다."
"제가 이와 관련해 저명한 언론에 당신의 실명을 밝히고 글을 쓴다면 저에게 절대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안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30만 원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1억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순간적으로 당황한다. 나의 표정을 살피지만 반응이 없자 눈동자가 흔들린다.
"알겠습니다.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진짜 1억 주시나요?" 그녀가 말한다.
"이미 끝난 일 같은데요."
"하겠습니다. 말할게요."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카페를 떠나는 내 입에 미소가 지어진다.
집에 도착한 나는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린다.
당신은 당신의 트라우마를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내 에세이의 제목이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삶의 고통과 절망을 돈으로 책정한다면 얼마일까요?
아니 트라우마를 없애신다면 얼마를 지불하실 건가요.
이 에세이에서 저는... 이하는 생략하겠다.
적당히 트라우마의 값어치를 말하는 내용이다.
내가 본 그녀는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심하게 존재한다.
말끝에 붙는 사과나 검사에서 자기를 숨기고 다르게 답변하는 행동 역시 트라우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트라우마는 살면서 자신을 조종하고 조심스럽게 만든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악습관을 만든다.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쓴 에세이의 결말은 이랬다.
언제까지나 트라우마에 붙잡혀 살 것인가요?
어쩌면 이 말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이 나를 빠져나간다. 다시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