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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다 Sep 25. 2021

세룰러 메모리

15분 동안 스토리텔링




"엄마!, 다녀올게요!"



급하게 집을 나서며, 학교 가는 길이다. 내가 사는 집은 3층 단독 주택으로 1층과 2층에는 엄마가 운영하는 학원, 3층 전체는 주거용으로 쓰고 있다.


오늘은 중3-1학기 마지막 기말고사가 있는 날, 어제 친구가 매달리는 틈에 괜스레 독서실에 갔다가 낭패를 보았다. 1도 공부를 못하고 집에 돌아와 밤을 새우다시피하고 나가는 길이다.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베스트 프렌드의 부탁만 아니었으면 늘 그러했듯 칼같이 거절했을 텐데, 둘째 날 시험을 망친 친구의 의기소침에 신경 쓰여서 독서실에 함께 갔다. 아니나 다를까, 개성 강한 친구들 5명은 1시간, 짧게는 30분 간격으로 번갈아 나를 휴게실로 끌고 가곤 했다.


난 독서실 타입이 아니다. 평소 쉬는 시간에 복습하면 그것으로 내신 공부를 다하는 셈이지만 시험 기간에는 적어도 3번 이상은 훑어줘야 최고 등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험 등수에 신경이 쓰이는 건, 엄마가 학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중고 대상으로 하는 단과 학원인데, 본인 딸 공부는 케어해 주시지 않으시지만 수강 중인 아이들 과목별 성적을 올리거나 바른 공부 태도에는 진심이시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을 전혀 주시지 않는 어머니이시지만, 나는 그런 엄마가 더 무섭다. 딸인 내가 바쁜 엄마를 대신해, 종종 초등학생들 채점을 봐 줄 때면 곁으로 다가와, 누나가 공부를 무척 잘하고 다방면에 모범이라는 말을 종종 내뱉으시거나 방황하는 중학생 아이들을 내 앞으로 끌고? 와 상담을 은근 슬쩍 넘기며 학습이며 또래에게만 느끼는 고충이나 고민을 나보고 공감해 줄 것을 조장하는 엄마를 보면, 시험 성적 개판 받아오면 분명 말 없는 압박감이 극에 달 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적어도 성적쯤은 잘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큰 도로 사거리에 위치한 집인 탓에 횡단보도를 건너야 학교로 갈 수 있다. 늘 익숙한 길을 건너 가는데 잠이 많은 내가 밤샘을 한 탓에 신호등 신호가 바뀜을 알리는 숫자가 몇 안 남았을 봤음에도, 성급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였다.



'끼~~~ 익~~~~~~!'



평소와 다른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런 와중에 내 주위로 몰러든 시선이 신경 쓰인다. 차에서 누군가가 놀라 급하게 내리는 어느 여자분이 묻기를



"학생! 괜찮아? 학생! 학생!"


'아.... 내가 지금 교통사고를 당한 건가?'라는 잠깐 스친 생각과 함께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하하, 괜찮아요. 가던 길 가세요."



이게 무슨 멍청하고도 바보를 자처하는 소리를 내뱉고 있는 건지...



"학생, 방금 전에 차에 부딪힌 거야. 내가 너무 미안하네. 잠시 핸드폰 알림을 확인하는 타이밍에 신호를 놓쳐 버렸네. 정말 미안해, 학생. 여기 근처 병원에 일단 가자고!"


"(운전 중에 휴대폰을 들여다 보시다니...;;;입이 근질 거린다.) 아... 안돼요. 오늘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이 있는 날이라서 학교로 가야 해요. 아픈 곳이 없으니, 가던 길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아니, 학생! 그래도 모르니 병원으로 바로 가야 해!"



잔뜩 구겨진 표정에 걱정인지 불안인지 얼굴에 드러나는 심각한 표정을 하는 아주머니 표정을 뒤로하고 나는 급하게 가던 길을 재촉하며 달려갔다.



"학생! 학생~ 이봐! 학생!"



나를 부르는 소리가 분명하지만 학교로 내달리는 거리만큼 학생이라는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아.... 쪽팔려!'


사고로 인해 오랫동안 여러 타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것이, 차에 부딪힌 사실보다 불쾌했다.


'아... 젠장...'


밤새는 바램에 지각 한 번 없던 내가 오늘 첫 지각을 할 판이다. 이래저래 중학교 공부 따위는 코흘리개 휴지 취급하던 나인데, 등수에 대한 압박감이 급 밀려온다.


'어제 독서실만 안 갔어도...'



후회가 밀려오는 틈에 놀라서인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점점 아파왔다. 그리고 눈앞에 희미하게 잔상이 떠 오르고, 머릿속에서는 '안돼!'라는 소리와 함께 낯선 여자분이 손을 뻗치며 나를 앉아 드는 장면이 갑작스레 스쳤다.



'아... 이게 뭐지...?'



급작스럽게 혼란스럽고 어지러움을 느끼는 타이밍에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김 일레븐!"


"레븐아!!"


'누구?' 뒤돌아 보니 같은 반 유현이다.


"어라, 이상해."


"뭐가?"


"이렇게 슬픈 표정을 하는 너를 처음 보는데?"


"내가? 그게 무슨 헛소리래?"



유현이 때문에 잠시 멈춘 발걸음 위로 길가에 세워져 있던 어느 검정 승용차의 사이드 미러에 내 얼굴을 비춰 보았다.


'아, 뭐야! 정말 슬픈 표정이네. 거기다 눈물까지 찔끔했어? 차에 부딪힌 일이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닌데, 아프지도 않았고 오히려 화가 날 일이지않나...?'



의아함을 뒤로하고 유현이와 서둘로 학교로 향한다. 어릴 적 소꿉친구인 그가 낯선 표정을 짓던 이유를 계속 묻지만 답할 시간이 없다. 조금 전 겪었던 교통사고를 얘기하면 시험이 대수냐면서 병원으로 끌고 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째 시간에 감독을 들어오는 선생님은 늘 깐깐한 기술가정 선생님이라 1분이라도 늦으면 폭풍 잔소리와 기본 태도가 걸러 먹었다며 반성문을 써야 한다. 터무니없이 개성이 강하고 신념이 확고하신 선생님이시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며 잠긴 생각을 떨치는데, 이상하다. 스물 걸음 앞이면 곧 정문인데, 평소와 달리 요란스럽고 시끄럽다. 여기 저기 아이들이 무리지어 서 있고 학교로 향하는 걸음들이 멈쳐있다.


아침부터 이상한 일이 있었지만 이게 무슨 일이지? 고개를 쭉 빼어들어 살피는 시야 사이로 ,어제까지 멀쩡하던 학교가 시커먼 연기를 내 뿜으며 불타고 있었다. 때마침, 소방차가 멀리서 '애앵애앵'거리며, 길을 비켜 달라고 우리가 서 있는 근처까지 소리를 접접 높여 오고 있다. 여기저기서 염려 어린 웅성 거리는 소리 사이로 간간이 '어떡해?', '이게 무슨 일이래?' 라는 추임새들이 반복해서 들린다.



"레븐아! 레븐아? 야! 안 들려?"



유현이가 내 어깨를 양팔로 잡고 흔들어 대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눈앞에 집을 나서던 길에, 교통 사고로 마주쳤던 아줌마 얼굴이 떠오르더니 "위험해! 안돼!"라는 소리가 내 머릿 속을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현이가 쉬지 않고 나를 부르는 소리와 함께 지탱해 주는 손 길이 잠시 느껴지는 순간, 귀에서 '삐-'거리는 이명과 함께 눈앞이 하얗게 온통 변해 버리다가 시커멓게 점등되어 버렸다.







'아, 머리 깨질 것 같아.'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눈을 뜨는데 익숙한 병원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레븐아! 괜찮아?"


"어? 유현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묻는 말에 유현이보다 한발 앞서 정기적으로 뵙는 의사 선생님께서 반갑게 말을 건넨다.


"이런, 오늘은 늘 하던 검사받는 날이 아닌데 응급실에서 보네. 반가워할 일은 아닌데 얼굴보니 반갑네."


"선생님, 저 무슨 이상 있나요?"


"아니, 괜찮아. 허벅지와 무릎 쪽에 타박상과 큰 멍이 있었던 것은 말고는 수술받았던 심장도 멀쩡하고 다른 곳에서는 이상 소견이 없어. 그런데, 레븐아. 타박상과 큰 멍이 생긴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언제 다친 거니?"


"아... 아침에 집을 나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길에 가볍게 차에 부딪혔어요..."



멍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읊조리니, 말이 끝나자마자, 유현이는 왜 진작에 말을 하지 않았냐며 노발대발 한다.



"이런, 교통사고는 눈에 띄는 상처가 적거나 없어도 후유증이 나중에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단다. 사고 직루엔 지체없이 병원에 내원하는 게 좋겠지?.

아, 그리고 어머님께는 연락을 해 두었으니 곧 도착 하실거야. "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 저 진짜 별다른 이상 없는 거 맞아요? 혹시 머리 쪽에 이상이 있거나 하는...?"


"아니,전혀. 왜? 무슨 불편함이 있는 거니?"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제 밤샘을 해서 좀 피곤했나 봐요. 그런 것 같아요. 하하하."



선생님과의 대화를 끝내고 얼마 있지 않아, 어머님께서 뛰어 들어오셨다. 쌀랑해진 가을에 카디건을 뒤집어 입으시고 신발은 짝이 맞지 않은 것을 신은 채 급하게 온 티가 영역했다.



"레븐아! 이게 무슨 일이니. 병원이랑 학교 두 곳에서 연락이 와서 너무 놀랐었어. 학교는 아이들이 등원하기 전에 불이 난 상황이라 인명 피해는 분명 없었다고 했는데, 병원에서 네가 있다고 하니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단다. 괜찮은 거야? 응?"


"네. 괜찮아요! 엄마. 하하하 어제 밤샘해서 어지러웠나 봐요."


"이 녀석, 몸도 약한 녀석이 밤샘까지 하고! 엄마는 몰랐었네. 미안해. 레븐아."


"괜찮아요. 원생들 시험 준비, 교재 연구에 할 일 많으셨잖아요. 거기다 아버지 기일도 다가오고요."


"그래... 고마워. 레븐아, 이해해 줘서. 정말 미안하구나."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 그날 밤부터, 나는 자주 불속에서 내가 구출되는 장면이 계속해서 반복 재생되고 있다.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일까? 아니면 내 어릴 적에 불이 났던 적이 있었던 걸까? 전혀 그런 기억이 없다. 엄마도 말씀하시길, 집에 불이 났던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도대체 이 꿈은 뭘까...?








참고) 세포 기억설이란 장기를 이식받은 수혜자들에게 나타나는 미스터리한 증상이다.

일부 의사들은 기증한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 기억이 수혜자에게 전이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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