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향기가 가득한 중국식 생선찜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요리는 쉽게 설명하면 홍소육의 생선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최근 정통 중화요리의 소개로 동파육의 사촌쯤으로 소개되는 홍소육과 한핏줄 요리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충 상상이 갈 것이다.
다만 끝에 붙은 ‘파이’라는 글자에 주의해주기 바란다. 사실 이 요리의 원형은 홍소육의 생선버전 홍샤오위(홍소어)이다. 홍샤오위의 경우 보통은 생선 한마리를 통으로 양념에 졸여서 만드는 요리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이 요리를 토막난 코다리로 만들었고, 그 결과 커팅된 생선으로 만든 홍샤오위를 뜻하는 홍샤오위파이가 된 것이다. 중국 요리는 배리에이션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홍소육은 먹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비교는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홍샤오위파이라는 요리는 무척이나 맛있다. 마늘과 생강, 파를 볶는 과정에서 들어간 식물성 기름과 담백 고소한 생선살, 그리고 달콤짭짤한 소스가 섞으면서 아주 좋은 밥반찬이 된다. 나는 술을 거의 먹지 않지만 괜찮은 술안주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맛 이외에도 이 요리는 아주 중요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만들기가 정말로 쉽다는 것이다. 달군 팬에 마늘, 생강, 파를 기름에 익힌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 둔 간장, 설탕, 식초, 술, 굴소스를 넣은 소스와 물을 팬에 넣고 끓인다. 이 소스가 끓기 시작하면 생선을 퐁당퐁당 넣고 뚜껑을 덮은 뒤 15분간 끓인다. 그리고 다시 뚜껑을 열어 끓이면서 소스를 충분히 졸인다. 냉동 파와 손질 코다리를 이용하면 사실상 도마와 칼을 사용하지 않고 라면 끓이듯 만들 수 있는 요리다. 예전에 만들었던 팔아프게 양파와 토마토를 볶던 인도나 중동음식보다 훨씬 간단하다. 소스의 비율만 맞추면 실패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볶음밥보다 훨씬 낮은 난이도라 할 만하다. (중국에서는 고춧가루를 넣어 빨간 색감과 매운맛을 더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내가 고춧가루를 넣고 안넣고 2가지로 각각 만들어 보니 술과 간장의 향을 충분히 느끼려면 안 넣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렇게 쉬운 중국 요리들이 많은데 왜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만들기가 까다로운 짜장과 짬뽕, 탕수육 위주의 중식문화가 형성되었는지 궁금하다. 중국요리의 경우 잘 찾아보면 재료준비만 하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간단하게 만드는 음식이 많다. 불을 올리고 1분 정도에 끝나는 요리도 많다. 이렇게 간단한 요리들이 한국 외식 신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은 신기한 노릇이다. 보수적인 한국 소비자의 입맛 문제도 있고, 이미 100년 가까이 확고하게 문법이 완성된 ‘중화요리’ 자체의 구조적인 보수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짜장면과 짬뽕으로 대표되는 산동출신 화상 계통의 중화요리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아쉬운 노릇이다.
여담의 여담이지만 동남아시아, 서구권에는 광동, 조주, 복건, 해남, 객가 등 중국 남부지역의 화교들이 대부분인데 비해 우리나라에는 산동출신의 화교들이 주류를 이룬다. (조선족과 개혁개방 이후 본토에서 들어온 신화교를 제외한다면) 그렇기 때문에 에그누들로 대표되는 중국 남부지역 스타일의 중화요리 대신 짬뽕과 짜장면으로 대표되는 한국 특유의 화상식 중화요리가 발달했다. 이것은 세계 화교 역사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라 생각한다. 내가 싫어해서 그렇지. 심지어는 라멘, 니라레바, 에비치리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화교 중화요리와도 차이가 있다. 물론 한국의 화교들은 나가사키 등지의 일본 정착 화교들과 교류가 있었다. 한국의 중화요리집에 일본의 반찬인 단무지(타쿠앙)가 나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또 다른 증거는 나가사키의 중식당 사해루에서 시작된 짬뽕이라는 요리가 한국의 대표 중화요리가 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정통 중화풍으로 만드려면 아마도 팔각이나 정향 같은 향신료가 더 들어갈 지도 모른다. 확실친 않아도. 그래서 마늘과 생강으로만 양념한 것은 한국인 입맛은 몰라도 중국인이나 대만인, 혹은 화교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것도 현지화된 퓨전 중화요리가 친다면 성립 못할 바도 없고 무엇보다 내 입맛에는 잘 맞았다.
사실 이 요리의 입맛을 돋운 것은 듬뿍 들어간 술의 존재이다. 보통 내가 요리할 때는 편의점에서 산 제일 저렴한 청주를 넣는데, 이번에는 마침 남은 백세주가 있어서 넣었더니 백세주의 향이 어울려 참 좋았다. 하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백세주는 분명히 좋은 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술을 싫어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세주가 내 냉장고에 있었던 데에는 짧은 뒷이야기가 있다. 나는 소위 말하는 ‘변호사시험 오탈자’이다.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변호사시험은 로스쿨을 졸업한 자가 5년 내에 5회만 응시할 수 있다. 5회 이상 변호사시험에 떨어질 경우에는 영원히 변호사시험에 다시 응시할 수 없다.
당연히 5번째 시험에 떨어진 것을 확인했을 때에는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가채점을 해서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말이다. 나는 그날 저녁을 그냥 보내기는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집앞 편의점에서 산토리 츄하이와 백세주, 안주로 연세크림빵과 카루비 포테토칩을 샀다. (이것은 내가 2년만에 먹는 술인데 나는 2024년에는 술을 1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는 컴퓨터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인 “블랙 호크 다운”을 켜서 보면서 술과 안주를 먹었다.
뭐 하는 이야기로 “인생이 쓰면 술이 달게 느껴진다.”고 하던데, 솔직히 내 인생에서 제일 거지 같은 상황 중 하나일 텐데도 여전히 술이 쓰게 느껴졌다. 내가 충분히 정신을 못 차린 것인 것, 아니면 술이 원래 그렇게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츄하이는 다 마셨지만 백세주는 반정도만 마시고 냉장고에 보관하게 되었다. 당연히 평소에 술을 거의 먹지 않다보니 그 뒤로 몇 달이나 백세주는 냉장고에 있으면서 가끔 중화요리의 재료로 사용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