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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Nov 12. 2017

풍자와 해학의 힘

풍자와 해학의 힘      

                                                                            김한빈



  벌써 8회째를 맞이한 광화문과 전국 주요 도시의 촛불이 보여준 것은 한국 사회가 품은 시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역량이었다. 소수 파워 엘리트들에 의해 독과점된 정치적 권력과 사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권력 남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분노가 수백 만 촛불로 타올랐다. 한편 축제와 같은 문화제로 승화된 비폭력 평화적 시위 양상은 ‘광장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시민운동의 일환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렵다. 우리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전세계를 놀라게 해 민주주의를 실현할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풍자’의 힘을 주목하고자 한다.


  풍자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주체가 도덕적으로 열등한 인물이나 사회현실인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처리하여 비판하는 것이다. 우리 문학은 풍자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조선 후기 지식인 박지원은 ‘양반전’, ‘호질’ 등 9편의 풍자소설을 지어 주로 양반 사회를 극적으로 희화화하여 신랄하게 비판했다. ‘양반전’은 신분제도가 변화하는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허례허식과 무단적인 전횡을 일삼는 양반을 고발하고, ‘호질’은 몰락한 양반의 허위의식과 위선을 비판한다. 서사무가에서 발전한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도 서민들이 겪는 삶의 애환뿐만 아니라 부패한 권력에 대한 항거 정신을 보여준다. ‘춘향전’은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자를 비판하고, ‘흥부전’은 서민들의 삶이 경제적 위기에 내몰린 부정한 사회현실을 제시한다. 사설시조나 민속극 ‘봉산탈춤’ 등도 풍자를 주된 표현 수법으로 활용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이나 청와대 비리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풍자하는 시위 문화는 이러한 전통과 맥락이 닿아 있다. 최근 여당 소속 국정 청문회 위원인 어느 국회의원에게 수많은 시민들이 18원 후원금을 내고 영수증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풍자의 힘은 건전한 비판의식의 발로다. 옳음과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건전한 상식이 그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한편 풍자와 더불어 골계미의 한 짝인 해학(유머)은 웃긴다는 점에서 풍자와 공통점이 있지만 출발점부터 다르다. 해학은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품은 휴머니즘을 갖고, 굳어진 분위기를 웃김으로써 화해적 분위로 전환하는 기능을 한다. 풍자가 비판이라면, 해학은 화해다. 흥부가 매품팔이를 하러 나갈 때 극구 만류하는 아내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해학의 진수가 발휘된다. 아내는 가장 느린 장단에 처연한 느낌을 자아내는 진양조로 남의 죄를 대신하여 매를 맞으러 가는 남편을 말리며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칠 리 있냐.’고 말한다. 흥부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볼기타령’을 빠르고 경쾌한 잦은몰이 장단으로 응수한다. 자신의 볼기가 별로 쓸모가 없으니 매라도 맞아보면 좋다고 웃긴다. 돈 생긴다는 말에 이것저것 사달라는 철없는 자식들을 대하는 흥부는 사랑이 넘친다. 비극적인 장면인데 웃긴다. 웃김으로써 비극을 극복한다. 이것이 해학의 힘이다. 우리 문학에서 나쁜 남자의 전형인 암행어사 이몽룡은 과거 급제 후 장모를 만나고 춘향과 옥중상봉할 때도 집안이 몰락했다고 의뭉스럽게 말한다. 이튿날 동헌에 앉아 무죄한 춘향을 방면할 때도 수청 들라고 능청스러운 농담한다. 


  우리 사회는 이번 촛불 시위를 기점으로 정치적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체제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정치적 위기는 곧 경제적 위기를 부른다. 그러지 않아도 힘든 경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내년엔 과거 외환 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적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풍자의 몫이다. 한편 경제적 살림살이가 어려운 이때, 우리는 흥부의 해학을 배울 필요가 있다. 가난한 아내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철부지 자식들을 사랑하는 흥부의 인간미에 감동한다. 남을 웃기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때 가능하다. 독일 속담에 길 위에서 웃고, 집 안에서 운다고 한다. 가정에서 감정적 거리를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위정자들의 헌신이 아니라 서민들의 풍자와 해학이다.



<오륙도신문>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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