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잡스가 공무원이라니 !
캄캄한 어둠 속 흐느껴 울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다가가기 두려웠지만, 용기 내서 한 발짝 내디뎠다.
울음소리가 너무 서글퍼서...나도 모르게 울고 있는 누군가를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벅 저벅
최대한 소리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바닥에서 신발이 떨어지며 쩌억 쩌억 소리를 냈다.
울고 있는 그 사람은 전혀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한참을 다가갔더니 이내 후드득 후드득 빗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 네 눈물이 비가 된 거니? 왜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니? ’
다가가 말을 건넸는데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그대로 울고만 있다.
한참을 울기만 하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을 꺼내는데,
“ 엄마 ”
‘ 응??엄마??? ’
“ 엄마!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 대체 어디로 가야 해? ”
‘ 이게 무슨??? ’
자세히 바라보니 10년 전 세차게 내리던 빗속에서 울고 있던 나였다.
“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 제발 외면하지 말고 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 ”울던 그날의 내가 내 어깨를 흔들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 놔... 놔줘!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 ”점점 강하게 어깨를 파고드는 손톱에 비명을 지르며 밀쳐냈다.
발버둥 치며 일어나보니 침실이었다.
‘ 하... 꿈이었네... ’
꿈이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조금 전 어깨에 닿았던 손톱의 촉감이 너무 생생했다.
[ 빵!!빵!! ]
아차! 초록 불이었네.
출근하는 차 안에서도 계속 정신은 꿈속에 가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야망이 가득한 아이였다.
중학교 때 비록 공부에서는 손을 놓았었지만 꿈만은 가득했었다.
그때 학교 밖에서 어울리던 한 친구와 이야기 나누었던 것이 생각난다.
" 나는 꼭 스티브 잡스 처럼 엄청난 부자가 될 거야 "
" 그래! 우리 꼭 성공하자 "
결의에 찬 다짐이었지만, 그냥 성공하고 싶은 열망만 있는 애송이들이었다.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무엇을 통해 성공하고 싶은지 따위의 구체적인 계획은 전무했다.
주변에서 성공하는 길이라고는 공무원이나 자격증 취득밖에 없어 보였다.
스티브 잡스가 공무원이라니...
큰일 날 소리.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나 최고 성공이 공무원인 줄 알며 살아온 우리 부모님 곁에서 자랐다면 공무원이 되었을까?
범국가적 손해, 세계적 손실이다.
학교에 다니며 시험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매년 진로 계획을 세워줄 전문가가 곁에 있었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학교 공부가 시시껄렁해 보였다.
재미도 없고, 지금 당장 수학 계산식 몇 개 더 공부한다고 이걸 나중에 써먹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당시의 나는 늘 미래가 두려웠고 무기력했으며 답답했었다.
그렇게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밖에서 무엇을 찾아냈을까?
소설 속에 나올법한 귀인의 등장이라거나, 불현듯 찾아온 꿈에 대한 각성이나, 온갖 풍파를 겪으며 다짐을 불태우거나 하는 이벤트는... 불행히도 없었다.
그저 밤거리를 배회하며 놀았다.
학교 공부가 시시껄렁해서 밖에 나왔는데 밖에는 더 시시껄렁한 어른들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교훈이라면, 나를 도와줄 어른 따위는 없다는 것?
별거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얼른 제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 아 참, 나를 도와줄 어른 따위 없었지 '
때마침 학교의 본보기가 되어 다른 방황하는 문제아들의 귀감이 되고자 내 자리는 없어졌다.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알고?
나는 미래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될 거라고.
당시 어울리던 친구들과 모든 관계를 끊고 1년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복학 준비를 하며 말이다.
하지만 한번 애송이가 쉽게 애송이를 탈피할 리 만무했다.
그저 뭔가 잘못됐다,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만 깨닫고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 오긴 했으나
그때에도 나는 뭘 해야 할지는 몰랐다.
웬만한 결심과 각오로 무장하고 다시 학교에 돌아갔어도 힘들었을 텐데 아무 생각 없이 다가온 복학은 역시나 견디기 힘들었다.
'네가 정말 정신 차렸나 어디 보자' 벼르고 있는 선생님들.
한 살 차이 별거 아닌데 그 별거 아닌 벽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던 같은 반 학우들.
내가 뭘 꼭 이뤄야겠다는 다짐과 방향 없이 멘탈 겁쟁이인 내가 더 힘들어진 학교생활을 결국 포기하고 다시 학교 밖으로 도망치듯 숨어버렸다.
그 후로, 어찌어찌 검정고시 성적우수자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긴 했지만, 그냥 그런 채로 살았다.
그때부터 나의 방황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는데 도대체가 뭘 하며 살아야 할지를 몰랐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내가 뭘 싫어하는지도.
뭘 먹고 싶은지도.
어딜 가고 싶은지도.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딱히 싫어하는 것도 없었고,
이거 먹어도 그만 저거 먹어도 그만.
여기 가도 그런가보다 저기 가도 그런가보다.
인생이 그냥 그랬다.
주변 사람들의 색에 물드는 카멜레온처럼 본성을 숨긴 채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듯이 살았는데
단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가슴에 저릿저릿한 불편한 감정이 하나 있었다는 것이다.
때 되면 욱신욱신 나를 건드리는 미쳐버릴 것 같은 감정 말이다.
어디 가서 미친 듯이 써버리고 싶은 열정이 있는데 그게 억눌려있는 느낌.
" 엄마. 나 마음속에 쓰고 싶은 열정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 "
가령,
키보드를 숨도 쉬지 않고 다다다다다다다 갈기고 싶다거나
캔버스에 붓질을 마구 칠해버리고 싶다거나
숨이 터져라! 달리고 싶은 것.
쏟아부을 무언가를 너무 간절히도 찾고 있었던 것인지 꿈에서도 나타났다.
누군가에게 진로 고민을 하는데 답을 알려줄 것처럼 하더니 결국 그대로 끝나버린 꿈.
오늘처럼 엄마에게 절규하는 꿈.
뭘 하면 좋을지 노트에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다 결국 찢어버리는 꿈.
그 빌어먹게 답답했던 느낌을 1화에서처럼 쌍둥이 독박 육아라는 극한 환경에 부딪히자 말도 안 되게
" ...이거였어...?? " 알아냈다.
당연히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었는데 생각조차 못 해보고 살았었다.
이걸로 뭘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로라하는 진로 전문가에게 상담받은 것도 아니었고,
나를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엄마에게서 나온 답도 아니었고,
이일 저일, 이 경험, 저 경험 다 해보고 알게 된 것도 아녔다.
그냥 삶이 너무 힘겨웠던 어느 날.
조용히 방 안에 앉아서 나도 모르게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누가 시킨 것도 어디서 본 것도 아니었는데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그래 마음아 !! 너 왜 자꾸 욱신거리고 툭하면 울 것 같은 건지 이유나 좀 들어보자'
그동안 슬픔을 애써 털어버리려고만 했지, 작정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려 하지는 않았었는데 이렇게 자꾸 아플 거면 아주 끝장을 보자 싶어서 슬픈 감정들을 모조리 꺼내놓았다.
슬프고 억눌린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기억에서조차 삭제해버렸던 비가 세차게 내리던 그날을 찾아냈다.